구술 컬렉션
최하원 구술 컬렉션
2014년 4월 2일~5월 3일까지 4회차에 걸쳐 연구자 김승경에 의해 진행된 영화감독 최하원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BKR006045_01)의 서비스용 편집본 1건
- 공개일
- 2022-06-30
- 업데이트일
- 2022-08-25
컬렉션 해제
2014년 생애사 - 최하원
본 구술컬렉션은 2014년 4월 2일부터 5월 3일까지 총 4회차에 걸쳐 연구원 김승경이 진행한 영화감독 최하원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을 편집한 온라인 서비스용 구술채록문입니다.
구술자인 최하원 감독은 어린 시절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1950년 경복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 초기 세검정에 있던 큰아버지댁으로 피난을 갔다가 9.28 수복 이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곧 1.4후퇴가 시작되었고, 구술자는 가족들과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제대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부친과 함께 임시학교들이 있었던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구술자는 본격적으로 농구선수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를 눈여겨 본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학교 연극부 활동을 하며, 농구선수에서 영화감독으로 꿈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의 처음 영화 현장 경험은 신경균 감독님의 연출부 생활이었습니다. 이후 이병일 감독과 이성구 감독 밑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던 최하원 감독은 이 시기 시나리오작가 이상현과 영화음악가 최창권을 만났습니다. 작곡가 최창권과는 영화 음악에 대한 견해가 서로 맞아 구술자가 감독이 된 이후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시나리오작가 이상현과는 함께 작품을 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때로는 논쟁을 하며 구술자가 자신만의 작품관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오랜 조연출 생활을 마치고, 1968년 최하원 감독은 <나무들 비탈에 서다>로 데뷔했습니다. 전후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다룬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현재 오프닝 장면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데, 본 구술에서는 최하원 감독을 통해 해당 장면이 어떻게 재현되었으며, 전체 영화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작품부터 구술자는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당시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히로시마 내 사랑>(알랭 레네, 1959)를 보고 충격을 받은 구술자는 외국의 영화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내 서양의 것을 따라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을 찾아 영화 속에 잘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구술자는 다음 작품으로 <독짓는 늙은이>(1969)를 선택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의 한국이 당면한 문제들- 혼전 성관계(<고백>), 미국 이민 문제(<갈매기의 꿈>), 미감아 문제(<타인의 숨결>), 청각장애아(<마지막 포옹>), 가족 간 관계의 문제(<황혼>), 성범죄 문제(<겨울사랑>) 등-을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과거 ‘전통’의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현재의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들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 산업이 침체되고, 검열이라는 한계와 더불어 ‘우수영화’를 통한 쿼터제로 특정 주제의 영화들이 강요되면서 구술자 역시 반공영화를 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구술자는 <나는 살아야한다>(1976), <학도의용군>(1976), <표적>(1977) 등의 작품을 통해 반공영화 속에서도 ‘인간’을 그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구술자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그의 종교영화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새남터의 북소리>(1972), <초대받은 사람들>(1981), <초대받은 성웅들>(1984) 등의 영화에서 최하원 감독은 단순히 종교적 신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특히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20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최하원 감독은 후학 양성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 1984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초대 교수로 10여 년간 일했으며, 단국대학교 영화과 교수로 출강했습니다. 또 다니엘 아루후의 『영화언어의 문법』(1985), 휴 배들리의 『기록영화 제작기법』(1994)를 번역하였고, 직접 『영화감독 현장』(2008)과 같은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구술사를 진행하다 보면 한국전쟁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게 됩니다. 구술자마다의 경험이 모두 다르고, 그것이 크든 작든 이후 생애에 미치는 영향도 저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최하원 감독의 경우, 전쟁에 대한 경험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그의 작품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문제로 발전했고 그가 이것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들은 그의 생애사 구술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최하원 감독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리고 한국전쟁 경험이 예술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데에도 본 구술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 구술컬렉션은 2014년 4월 2일부터 5월 3일까지 총 4회차에 걸쳐 연구원 김승경이 진행한 영화감독 최하원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을 편집한 온라인 서비스용 구술채록문입니다.
구술자인 최하원 감독은 어린 시절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1950년 경복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 초기 세검정에 있던 큰아버지댁으로 피난을 갔다가 9.28 수복 이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곧 1.4후퇴가 시작되었고, 구술자는 가족들과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제대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부친과 함께 임시학교들이 있었던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구술자는 본격적으로 농구선수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를 눈여겨 본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학교 연극부 활동을 하며, 농구선수에서 영화감독으로 꿈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의 처음 영화 현장 경험은 신경균 감독님의 연출부 생활이었습니다. 이후 이병일 감독과 이성구 감독 밑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던 최하원 감독은 이 시기 시나리오작가 이상현과 영화음악가 최창권을 만났습니다. 작곡가 최창권과는 영화 음악에 대한 견해가 서로 맞아 구술자가 감독이 된 이후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시나리오작가 이상현과는 함께 작품을 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때로는 논쟁을 하며 구술자가 자신만의 작품관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오랜 조연출 생활을 마치고, 1968년 최하원 감독은 <나무들 비탈에 서다>로 데뷔했습니다. 전후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다룬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현재 오프닝 장면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데, 본 구술에서는 최하원 감독을 통해 해당 장면이 어떻게 재현되었으며, 전체 영화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작품부터 구술자는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당시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히로시마 내 사랑>(알랭 레네, 1959)를 보고 충격을 받은 구술자는 외국의 영화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내 서양의 것을 따라가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을 찾아 영화 속에 잘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구술자는 다음 작품으로 <독짓는 늙은이>(1969)를 선택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의 한국이 당면한 문제들- 혼전 성관계(<고백>), 미국 이민 문제(<갈매기의 꿈>), 미감아 문제(<타인의 숨결>), 청각장애아(<마지막 포옹>), 가족 간 관계의 문제(<황혼>), 성범죄 문제(<겨울사랑>) 등-을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과거 ‘전통’의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현재의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들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 산업이 침체되고, 검열이라는 한계와 더불어 ‘우수영화’를 통한 쿼터제로 특정 주제의 영화들이 강요되면서 구술자 역시 반공영화를 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구술자는 <나는 살아야한다>(1976), <학도의용군>(1976), <표적>(1977) 등의 작품을 통해 반공영화 속에서도 ‘인간’을 그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구술자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그의 종교영화에서 더욱 잘 드러납니다. <새남터의 북소리>(1972), <초대받은 사람들>(1981), <초대받은 성웅들>(1984) 등의 영화에서 최하원 감독은 단순히 종교적 신앙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특히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20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최하원 감독은 후학 양성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져, 1984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초대 교수로 10여 년간 일했으며, 단국대학교 영화과 교수로 출강했습니다. 또 다니엘 아루후의 『영화언어의 문법』(1985), 휴 배들리의 『기록영화 제작기법』(1994)를 번역하였고, 직접 『영화감독 현장』(2008)과 같은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구술사를 진행하다 보면 한국전쟁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게 됩니다. 구술자마다의 경험이 모두 다르고, 그것이 크든 작든 이후 생애에 미치는 영향도 저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최하원 감독의 경우, 전쟁에 대한 경험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그의 작품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문제로 발전했고 그가 이것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들은 그의 생애사 구술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최하원 감독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리고 한국전쟁 경험이 예술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데에도 본 구술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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