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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철 구술 컬렉션
구술 컬렉션

박행철 구술 컬렉션

2014년 7월 8일~8월 8일까지 4회차에 걸쳐 연구자 김승경에 의해 진행된 영화제작자 박행철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BKR006044_01)의 서비스용 편집본 1건

공개일
2022-07-01
업데이트일
2022-08-25

컬렉션 해제

2014년 생애사 - 박행철

  본 구술컬렉션은 2014년 7월 8일부터 8월 8일까지 총 4회차에 걸쳐 연구원 김승경이 진행한 영화제작자 박행철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을 편집한 온라인 서비스용 구술채록문입니다.
  구술자 박행철은 1934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셨던 구술자의 아버지는 그가 의대에 진학하길 바랬지만 진학에 실패했고, 배우를 꿈꾸며 서라벌예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배우의 길을 반대했던 부모님이 전혀 등록금을 대주지 않았기 때문에, 구술자는 자립을 위해서라도 빨리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KBS에서 실시한 성우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성우 남해연의 눈에 띄어 서라벌영화공사 신인배우 카메라 테스트를 받게 된 구술자는 <양산도>(김기영, 1955)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영화 현장에 전문 제작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술자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 때에는 현장 일을 도왔고, 적극적인 구술자가 마음에 들었던 현장 작업자들이 그에게 제작부 일을 제안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1959년 현대영화사에서 제작한 <춘희>(신상옥, 1959)를 통해 신상옥 감독을 만나게 된 구술자는 신필름에 입사하여 월급제 PD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행철은 1967년까지 신필름의 전성기를 함께한 제작자로, 그의 구술은 2008년 진행한 주제사 ‘신필름’ 편과 함께 신필름이라는 1960년대 한국영화 산업을 대표하는 영화사와 당시 영화 제작 현장에서 제작 PD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가 참여했던 신필름의 대표작들 <성춘향>(신상옥, 1960), <백사부인>(신상옥, 1960), <로맨스 빠빠>(신상옥, 1960),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전응주, 1962),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 등의 제작 현장에서 그가 경험한 일들은 그 자체로 신필름의 역사이며, 특히 그가 제작PD였기에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1967년 신필름에서는 시범적으로 PD제를 도입합니다. 이때 구술자는 동료 제작자 최승민과 함께 프리랜서 제작 PD가 되었습니다. 신필름 소속 제작PD 시절에는 전체 제작비를 세부 항목 별로 책정하여 제작자인 신상옥 감독의 허가를 받은 후 운용했지만, 프리랜서 제작PD가 된 이후로 전체 제작비 안에 자신의 인건비가 포함된, 즉 제작자의 역할에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도 그는 신필름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75년 이형표 감독의 추천으로 양종해 감독이 세운 문화영화사인 ‘서울문화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구술자는 1997년까지 다수의 문화영화 CF 제작에 참여하였습니다.
  영화제작자 박행철의 구술은 극영화에서부터 문화영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 산업에서 제작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영화 감독이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들을 구체화하여 화면 속에 담아내기 위해 제작PD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는지를 알고 싶은 분들께 본 구술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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