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컬렉션
하연남 구술 컬렉션
2014년 4월 11일~5월 2일까지 3회차에 걸쳐 연구자 이정아에 의해 진행된 영화배우 하연남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BKR006046_01)의 서비스용 편집본 1건
- 공개일
- 2022-06-27
- 업데이트일
- 2023-02-14
컬렉션 해제
2014년 생애사 - 하연남
본 구술컬렉션은 2014년 4월 11일부터 5월 2일까지 총 3회차에 걸쳐 연구원 이정아가 진행한 영화배우이자 발명가인 하연남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을 편집한 온라인 서비스용 구술채록문입니다.
구술자 하연남(본명 하상남)은 1946년 고려영화주식회사에서 주최한 신인 배우 선발 대회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사실 데뷔 이전에 그녀는 부친의 권유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재학 중 가세가 기울어 계속 학교를 다닐 수는 없었으나, 의학전문학교에서 배운 것을 살려 산파양성소에 입학하여 계속 의학 지식을 쌓았고, 이를 토대로 약방에 취직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학 공부는 그녀에게 생계 이상으로, 그리고 영화배우 활동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처음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부친의 강한 반대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최인규 감독이 부친을 직접 찾아가 설득해주었고, 그렇게 출연하게 된 영화가 바로 해방 직후의 기쁨을 보여준 영화 <자유만세>(최인규, 1946)였습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간호사 역을 맡았는데, 연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전에 의학 공부를 한 이력이 연기를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배우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났고 차마 피난을 가지 못했던 구술자의 가족들은 인민군 점령 하의 서울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또 지내고 있던 집에 폭격이 떨어져 한쪽 팔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자유만세>에 함께 출연했던 윤봉춘 감독이 구술자를 찾아와 영화 출연을 권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팔의 부상과 정신적 피로로 인해 구술자는 쉽게 승낙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윤봉춘 감독은 구술자를 설득했고, 그렇게 출연하게 된 영화가 <처녀별>(윤봉춘, 1956)이었습니다. 그녀의 장애를 바라보는 일부 따가운 시선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윤봉춘 감독과 스태프들의 배려로 무사히 영화 촬영을 끝낼 수 있었고, 흥행에도 성공하게 됩니다. 이는 구술자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처녀별>의 성공 이후 구술자는 연달아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노들강변>(신강균, 1957), <잊을 수 없는 사람들>(유재원, 1957) 그리고 이듬해 <며느리의 죽음>(곽건, 1958), <추억의 목걸이>(박상호, 1959), <인생대학 일년생>(윤봉춘, 1959)까지 짧은 기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술자의 영화계 활동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저 언덕을 넘어서>(박성복, 1960), <유쾌한 삼형제와 40인의 처녀>(김용덕, 1963), <마도로스 박>(신경균, 1964), <죽은 자와 산 자>(이강천, 1966) 등에 간간히 출연하기는 했으나, 전쟁 때의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고 주변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암굴왕>(최인현, 1968)을 마지막으로 구술자는 영화계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구술자는 은퇴 후 발명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여성발명협회의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배우자인 이효창 선생과 함께 연구한 발명품으로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발명특허전에서 두 차례나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영화계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 자신을 영화배우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구술자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고했습니다.
본 구술은 해방 직후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영화계의 상황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상황과 그로 인한 개인의 아픔도 엿볼 수 있습니다. 1940년대~1960년대까지의 한국영화계의 상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여성발명가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본 구술컬렉션은 2014년 4월 11일부터 5월 2일까지 총 3회차에 걸쳐 연구원 이정아가 진행한 영화배우이자 발명가인 하연남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을 편집한 온라인 서비스용 구술채록문입니다.
구술자 하연남(본명 하상남)은 1946년 고려영화주식회사에서 주최한 신인 배우 선발 대회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사실 데뷔 이전에 그녀는 부친의 권유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재학 중 가세가 기울어 계속 학교를 다닐 수는 없었으나, 의학전문학교에서 배운 것을 살려 산파양성소에 입학하여 계속 의학 지식을 쌓았고, 이를 토대로 약방에 취직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학 공부는 그녀에게 생계 이상으로, 그리고 영화배우 활동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처음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부친의 강한 반대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최인규 감독이 부친을 직접 찾아가 설득해주었고, 그렇게 출연하게 된 영화가 바로 해방 직후의 기쁨을 보여준 영화 <자유만세>(최인규, 1946)였습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간호사 역을 맡았는데, 연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전에 의학 공부를 한 이력이 연기를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배우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났고 차마 피난을 가지 못했던 구술자의 가족들은 인민군 점령 하의 서울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또 지내고 있던 집에 폭격이 떨어져 한쪽 팔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자유만세>에 함께 출연했던 윤봉춘 감독이 구술자를 찾아와 영화 출연을 권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팔의 부상과 정신적 피로로 인해 구술자는 쉽게 승낙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윤봉춘 감독은 구술자를 설득했고, 그렇게 출연하게 된 영화가 <처녀별>(윤봉춘, 1956)이었습니다. 그녀의 장애를 바라보는 일부 따가운 시선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윤봉춘 감독과 스태프들의 배려로 무사히 영화 촬영을 끝낼 수 있었고, 흥행에도 성공하게 됩니다. 이는 구술자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처녀별>의 성공 이후 구술자는 연달아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노들강변>(신강균, 1957), <잊을 수 없는 사람들>(유재원, 1957) 그리고 이듬해 <며느리의 죽음>(곽건, 1958), <추억의 목걸이>(박상호, 1959), <인생대학 일년생>(윤봉춘, 1959)까지 짧은 기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술자의 영화계 활동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저 언덕을 넘어서>(박성복, 1960), <유쾌한 삼형제와 40인의 처녀>(김용덕, 1963), <마도로스 박>(신경균, 1964), <죽은 자와 산 자>(이강천, 1966) 등에 간간히 출연하기는 했으나, 전쟁 때의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고 주변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암굴왕>(최인현, 1968)을 마지막으로 구술자는 영화계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구술자는 은퇴 후 발명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여성발명협회의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배우자인 이효창 선생과 함께 연구한 발명품으로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발명특허전에서 두 차례나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영화계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 자신을 영화배우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구술자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해 회고했습니다.
본 구술은 해방 직후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영화계의 상황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상황과 그로 인한 개인의 아픔도 엿볼 수 있습니다. 1940년대~1960년대까지의 한국영화계의 상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여성발명가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키워드
등록된 키워드가 없습니다.
업데이트 내역
업데이트 내역이 없습니다.
연계자료
자료 시각화
아래 분류를 눌러 보세요. 이 컬렉션의 소장자료가 어떤 분야·유형·소속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좌우로 밀어 전체 자료를 확인하세요.
참고자료 · 인용 안내
등록된 참고자료 및 인용 안내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