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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조선인극장 주보 컬렉션
디지털원문 컬렉션

일제시기 조선인극장 주보 컬렉션

일제시기 조선인극장(단성사, 조선극장) 주보 66건 컬렉션

공개일
2022-01-26
업데이트일
2025-05-28

컬렉션 해제

100년 전 극장은 영화를 어떻게 홍보했을까?

주로 A4 한 장 정도 분량에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를 소개하는 전단들은 오늘날 어느 극장에서든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 홍보의 중요성이 떨어져가고 있어서인지 전단의 품질이 크게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극장의 마케팅 도구로서 전단지는 과거로 갈수록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 자료원이 이미 공개하고 있는 1950년대 외화 전단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한 영화에 대해 20페이지 넘게 소개되는 거의 소책자에 가까운 전단지도 있으니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영화 소개 전단은 1950년대 이후와 다른 모양새를 띕니다. 개별 영화가 아니라 극장 상영작들을 중심으로 한 라인업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단의 제작 주체 역시 극장들이었습니다. 극장들은 주별로 교체되는 영화들을 소개하기 위해 꾸준히 주보를 만들어 배포하였습니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소개되는 디지털 주보는, 1926년에서 1931년 사이(예외적으로 1937년 단성사 주보 1건이 있습니다) 조선인 대상 서울 소재 극장인 단성사와 조선극장의 주보 66건입니다(조선극장 39건, 단성사 주보 27건). 조선인 대상 극장이라 표현한 것은, 1910년대 이래 서울(경성)의 영화관은 서울 내 거주하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극장과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극장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0년부터 경성고등연예관, 대정관, 황금관 등의 일본인 대상 영화 전용 상설관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1912년 생긴 우미관, 1918년 신축 후 영화상설관이 된 단성사, 1922년 신설된 조선극장 등이 조선인 대상 영화상설관으로 운영되며 삼파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1926년은 <아리랑>이 큰 성공을 거두며 조선영화가 산업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고, 이후 1930년대 초까지 무성영화의 전성기가 이어졌던 출발점이 되었던 해입니다. 또한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세계 각국의 영화배급 체제가 완비된 시기로, 1927년 발성영화의 등장을 앞두고 무성영화의 완성도가 극에 달했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산업과 문화가 성장하는 가운데 극장별 경쟁이 심화되어 홍보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개별 영화의 소개와 영화팬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당시 만들어진 주보가 세련된 표지 디자인에서부터 지질, 지면 배치에 이르기까지 단순한 정보전달지 이상의 디자인적 가치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단성사의 단성영화구락부, 조선극장의 조극팬구락부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이 주보들은 이와 같이 조직화된 영화 애호가들을 위한 정보지로서 역할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컬렉션에 소개되는 자료들 중 대부분인 64건은 영상자료원이 2018-19년 구입공고사업을 통해 구입한 자료들이고, 두 건은 고 김학성 촬영감독의 아드님인 김충남 님으로부터 2008년에 기증받은 것입니다. 
 
기획·진행: 조준형(학예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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