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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 구술 컬렉션
구술 컬렉션

김지헌 구술 컬렉션

2014년 6월 10일~7월 9일까지 4회차에 걸쳐 연구자 이정아에 의해 진행된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BKR006046_01)의 서비스용 편집본 1건

공개일
2022-06-29
업데이트일
2022-08-25

컬렉션 해제

2014년 생애사 - 김지헌

  본 구술컬렉션은 2014년 6월 10일부터 7월 16일까지 총 5회차에 걸쳐 연구원 이정아가 진행한 시나리오작가 김지헌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을 편집한 온라인 서비스용 구술채록문입니다.
  구술자 김지헌은 1930년 9월 26일 평안남도 진남포 비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자랐던 김지헌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미술에 탁월한 소질을 보였습니다. 경동공립중학교에 진학한 구술자는 화가가 되고자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무작정 부산으로 떠났지만 형님에게 들켜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그의 글재주를 눈여겨 본 고향 형님의 권유로 시나리오를 쓰게 됩니다. 그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키네마준보》와 영화 평론, 시나리오와 관련된 서적들을 보며 혼자 시나리오 작법을 독학한 후 고려영화주식회사를 찾아갔습니다. 몇 차례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영화 지식들을 기특하게 생각한 최인규 감독이 한 편의 영화가 몇 개의 커트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세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구술자는 하루 종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커트를 세며 보냈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좋은 영화란 커트를 세기 어려울 만큼 흡인력이 강한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답을 들은 최인규 감독은 구술자에게 “손님을 절대 놔주지 않는 흡인력 있는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가져오라”고 말하며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이에 구술자는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예술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했다가 탈출, 논산에서 만난 시나리오작가 하유상의 도움으로 광주로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건강을 회복한 구술자는 광주 군관학교에서 발행하는 정훈잡지 편집관으로 일을 하며 많은 문학청년들과 어울렸는데, 특히 이때 만난 서정주 시인에게 보여준 시는 후일 《현대문학》에 수록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구술자는 『중앙일보』에서 잠시 문화부 기자 생황을 했으나, 작가가 되기 위해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공모, 당선되어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술자는 이때 처음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잘 알고 있는 필명인 ‘김지헌’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시나리오작가 활동에 들어간 구술자는 이성구 감독, 이강원 감독, 제작자 전홍식 등과 함께 신예프로덕션을 창립하고, 그 창립작으로 구술자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영화 <젊은 표정>(이성구, 1960)을 제작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평단의 호평과 달리 흥행에서는 그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런 구술자의 작품 인생이 달라진 것은 ‘이만희’ 감독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만희 감독은 <7인의 여포로>(1965)로 인해 고초를 겪었을 때 만난 동료 재소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쓴 시나리오가 바로 <만추>(이만희, 1966)입니다. 개봉 당시 국내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일본에서도 상영되어 1972년 사이토 고이치 감독에 의해 <약속>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한 이 영화는 1975년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으로, 1981년 김수영 감독의 <만추>로, 그리고 2010년 김태용 감독의 <만추>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거듭하며 다시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새로운 시대적 색채를 덧입으며 꾸준히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는 구술자의 시나리오 안에 모든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와 작품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1960년대까지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시나리오들을 발표했던 구술자는 1970년대 들어와 더욱 강력해진 검열과 제재로 인해 작품활동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완성하더라도 검열로 인해 훼손되고 망가져 코미디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한국영화의 질적 저하를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영화 산업 전체를 위축시키는 국가의 문화 정책에 대해 글로써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서도 여전히 변화를 꿈꿀 수 없는 한국과 영화계 상황에 절망한 구술자는 결국 미국 이민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LA에 정착한 김지헌 작가는 그곳에서도 미국 로케이션 촬영을 오는 한국 영화인들을 톱거나 한미영화학회와 주한국영화인회의 활동을 통해 먼 곳에서나마 여전히 한국 영화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계속해서 이어나갔습니다. 10년 뒤 구술자가 귀국했을 때, 한국의 상황은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국에서 영화인들을 지원하고 후진 양성에 힘쓰며, 2015년 작고하실 때까지 한국영화계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해방 직후 훌륭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인들의 바람과 1960년대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영화에 가해진 규제와 이를 타파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노력 등 한국영화사의 의미있는 순간들을 구술자 김지헌만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이 구술은 한 명의 시나리오작가의 삶을 넘어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영화계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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