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컬렉션
정일성 구술 컬렉션
2017년 4월 20일~5월 16일까지 5회차에 걸쳐 연구자 이정아에 의해 진행된 촬영감독 정일성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BKR006223_01)의 서비스용 편집본 1건/음성파일 6건/구술 현장 영상 5건/구술 현장스틸 33건
- 공개일
- 2022-06-13
- 업데이트일
- 2025-09-25
컬렉션 해제
2017년 생애사 - 정일성
1929년 2월 29일 일본 동경에서 출생한 촬영감독 정일성은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해방 후 조선으로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간 구술자는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미공보원의 공군홍보영화 스태프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는 미공보원 원장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선배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촬영기사인 김학성의 조수로 들어가 3년간 도제 생활을 하던 그는 드디어 1957년 <가거라 슬픔이여>(조긍하, 1957)를 통해 촬영기사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정권은 검열로 창작의 자유를 통제했고, 구술자는 이에 환멸을 느껴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아시아영화재단의 후원으로 떠난 유학에서 정일성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수련을 받았으며, 우리에게도 유명한 영화 <붉은 수염>(구로사와 아키라, 1965)의 B카메라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정일성 촬영감독은 1970년대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등 당대 대표적인 감독들과 연이어 함께 작업하며, 오늘날까지도 한국영화사 연구자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임권택 감독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영화 <만다라>(임권택, 1981)을 시작으로, <안개마을>(임권택, 1982), <비구니>(임권택, 1984), <길소뜸>(임권택, 1985) 등 당시 한국의 사회적 상황을 리얼리즘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예술성까지 인정받은 작품들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런 임권택 감독과 함께한 작업들은 한국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특히 1990년 <장군의 아들>(임권택, 1990)은 미국영화 수입자유화와 직배로 힘들었던 한국영화 시장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주었고, 1993년 <서편제>는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기록했던 모든 흥행기록들을 경신했으며, 2006년 <취화선>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미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영화와 카메라에 대한 공부를 놓지 않고 있는 구술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구술은 한국영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역동적 변화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1929년 2월 29일 일본 동경에서 출생한 촬영감독 정일성은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해방 후 조선으로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간 구술자는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미공보원의 공군홍보영화 스태프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영화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는 미공보원 원장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선배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촬영기사인 김학성의 조수로 들어가 3년간 도제 생활을 하던 그는 드디어 1957년 <가거라 슬픔이여>(조긍하, 1957)를 통해 촬영기사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정권은 검열로 창작의 자유를 통제했고, 구술자는 이에 환멸을 느껴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아시아영화재단의 후원으로 떠난 유학에서 정일성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수련을 받았으며, 우리에게도 유명한 영화 <붉은 수염>(구로사와 아키라, 1965)의 B카메라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정일성 촬영감독은 1970년대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등 당대 대표적인 감독들과 연이어 함께 작업하며, 오늘날까지도 한국영화사 연구자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임권택 감독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영화 <만다라>(임권택, 1981)을 시작으로, <안개마을>(임권택, 1982), <비구니>(임권택, 1984), <길소뜸>(임권택, 1985) 등 당시 한국의 사회적 상황을 리얼리즘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예술성까지 인정받은 작품들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이런 임권택 감독과 함께한 작업들은 한국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특히 1990년 <장군의 아들>(임권택, 1990)은 미국영화 수입자유화와 직배로 힘들었던 한국영화 시장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주었고, 1993년 <서편제>는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기록했던 모든 흥행기록들을 경신했으며, 2006년 <취화선>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미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영화와 카메라에 대한 공부를 놓지 않고 있는 구술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구술은 한국영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역동적 변화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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