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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라 구술 컬렉션
구술 컬렉션

김희라 구술 컬렉션

2021년 8월 18일~9월 13일까지 연구자 남기웅에 의해 진행된 영화배우 김희라의 생애사 구술 채록문(BKR006427_04)의 서비스용 편집본 1건/현장사진 27건

공개일
2022-06-13
업데이트일
2022-08-25

컬렉션 해제

2021년 생애사 - 김희라

 본 구술은 2021년 8월 18일부터 9월 13일까지 4회차에 걸쳐 연구원 남기웅이 진행한 영화배우 김희라의 구술 생애사 채록문의 원본을 편집한 것입니다.
 구술자 김희라는 1950년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대스타였던 부친 김승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생계를 위해 영화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이전까지 부친이 유명한 영화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연기에 전혀 뜻이 없었다고는 말하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구술자는 이러한 자신의 신체적 역량을 살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김희라는 액션 연기에 있어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인터뷰 도중 직접 액션 연기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뇌경색으로 움직임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날카로운 눈빛과 힘있게 내뻗는 주먹은 본 구술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액션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연기력으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짝코>(임권택, 1980)는 그에게도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구술자는 회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연기한 ‘짝코’의 독특한 외양이 구술자의 배우자이자, 4회차 구술 내내 그의 곁에서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들을 되살려주고자 노력했던 김수연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은 본 구술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미디어의 벽도 과감하게 넘어서고자 도전했던 구술자는 스크린에서 TV로 옮겨갔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인기 드라마인 KBS 에서 ‘장비’ 역할로 출연했던 그는, 특유의 호쾌한 웃음소리와 익살스러운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가 구술을 통해 이야기한 영화 스크린과 TV에서의 연기 변화는 그야말로 그가 배우라는 직업과 연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연구를 거듭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던 때에,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대중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끝없는 노력으로 재활에 성공한 후 그는 다시 스크린으로 복귀했습니다. 2006년 <구미호가족>(이형곤), <사생결단>(최호)에 연이어 출연을 하는가 하면, 2010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통해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합니다. 그럼에도 겸손하게 “해놓은 게 없다”며 한숨을 짓는 모습을 통해 아직까지도 그에게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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