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컬렉션
1970~1980년대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의 활동과 영화문화의 변화
- 공개일
- 2023-01-13
- 업데이트일
- 2025-02-17
컬렉션 해제
2021년 주제사 - 1970~1980년대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의 활동과 영화문화의 변화
1987년 제5차 영화법개정으로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국에서 외화 수입과 배급은 ‘외화 쿼터제’를 통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기마다 수입 편수나 쿼터 지급 조건이 조금씩 변화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우수한 한국영화를 제작하거나 해외 수출 실적이 있을 경우 1편의 외화를 수입해 올 수 있는 쿼터가 주어졌다. 외화는 당시 한국 영화산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많은 영화제작사들이 이 수입 쿼터를 얻고자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화 수입사들은 흥행이 잘 되고, 수익성이 높은 영화들을 위주로 수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유럽의 예술영화들은 좀처럼 국내에서 상영 기회를 얻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968년 처음 문을 연 프랑스문화원은 주 2~4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프랑스영화 상영회를 개최했습니다. 자막도 없이 그저 화면만을 보고 내용을 유추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도서나 잡지, 신문 기사를 통해서만 접했던 프랑스 누벨 바그의 영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랑스문화원에는 영화를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토론 모임을 만들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영화에 대한 지식들을 공유하고, 직접 제작한 영상들을 함께 보며 영화를 보는 눈을 키움과 동시에 새로운 영화 제작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어 1970년에는 주한독일문화원이 설립되었습니다. 독일문화원에서는 영화 상영뿐 아니라, 대학생 연극 모임인 ‘프라이에 뷔네’를 통한 연극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 한편, 무용⋅음악회⋅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독일문화원의 활동과 관련하여, 구술자들은 공통적으로 ‘빔 벤더스의 내한’을 인상 깊은 이벤트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손꼽히던 빔 벤더스의 방문으로 많은 영화팬들이 독일문화원을 찾았고, 진지한 해외 영화인과의 교류를 통해 젊은 영화인들은 당시로서는 막연했던 유럽의 영화와 영화계를 더욱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1970~1980년대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의 활동과 당시 이로 인한 영화문화의 변화에 대해 총 10명의 구술자들이 참여하여 12회차에 걸쳐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먼저 프랑스문화원의 운영과 활동, 이를 거쳐간 많은 영화인들에 대해서는 프랑스문화원에서 영사기사로 일했던 구술자 박건섭이 이전에 기록으로는 알 수 없었던 구체적 내용들을 구술했습니다. 그리고 독일문화원의 운영과 활동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독일문화원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구술자 맹완호와 ‘프라이에 뷔네’ 멤버로 활동했던 김승수로 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영국문화원에 대해서는 1970년대 초중반 영국문화원 원장의 비서로 근무한 구술자 김명식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원의 이용자로서 당시의 문화원에서의 영화 관람 경험이 이후 한국영화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이장호, 이세민, 정유성, 김홍준, 한옥희의 구술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970~1980년대 대학교와 청년문화와 해외문화원, 그리고 한국영화계의 전반적인 상황과 이들의 연결지점들을 장선우 구술 안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본 구술이 1970~80년대 청년들에게서 영화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었고, 또 그 안에서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예술영화 운동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1987년 제5차 영화법개정으로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국에서 외화 수입과 배급은 ‘외화 쿼터제’를 통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기마다 수입 편수나 쿼터 지급 조건이 조금씩 변화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우수한 한국영화를 제작하거나 해외 수출 실적이 있을 경우 1편의 외화를 수입해 올 수 있는 쿼터가 주어졌다. 외화는 당시 한국 영화산업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많은 영화제작사들이 이 수입 쿼터를 얻고자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화 수입사들은 흥행이 잘 되고, 수익성이 높은 영화들을 위주로 수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유럽의 예술영화들은 좀처럼 국내에서 상영 기회를 얻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968년 처음 문을 연 프랑스문화원은 주 2~4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프랑스영화 상영회를 개최했습니다. 자막도 없이 그저 화면만을 보고 내용을 유추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도서나 잡지, 신문 기사를 통해서만 접했던 프랑스 누벨 바그의 영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프랑스문화원에는 영화를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토론 모임을 만들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영화에 대한 지식들을 공유하고, 직접 제작한 영상들을 함께 보며 영화를 보는 눈을 키움과 동시에 새로운 영화 제작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어 1970년에는 주한독일문화원이 설립되었습니다. 독일문화원에서는 영화 상영뿐 아니라, 대학생 연극 모임인 ‘프라이에 뷔네’를 통한 연극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 한편, 무용⋅음악회⋅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독일문화원의 활동과 관련하여, 구술자들은 공통적으로 ‘빔 벤더스의 내한’을 인상 깊은 이벤트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손꼽히던 빔 벤더스의 방문으로 많은 영화팬들이 독일문화원을 찾았고, 진지한 해외 영화인과의 교류를 통해 젊은 영화인들은 당시로서는 막연했던 유럽의 영화와 영화계를 더욱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1970~1980년대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의 활동과 당시 이로 인한 영화문화의 변화에 대해 총 10명의 구술자들이 참여하여 12회차에 걸쳐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먼저 프랑스문화원의 운영과 활동, 이를 거쳐간 많은 영화인들에 대해서는 프랑스문화원에서 영사기사로 일했던 구술자 박건섭이 이전에 기록으로는 알 수 없었던 구체적 내용들을 구술했습니다. 그리고 독일문화원의 운영과 활동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독일문화원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구술자 맹완호와 ‘프라이에 뷔네’ 멤버로 활동했던 김승수로 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영국문화원에 대해서는 1970년대 초중반 영국문화원 원장의 비서로 근무한 구술자 김명식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원의 이용자로서 당시의 문화원에서의 영화 관람 경험이 이후 한국영화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이장호, 이세민, 정유성, 김홍준, 한옥희의 구술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970~1980년대 대학교와 청년문화와 해외문화원, 그리고 한국영화계의 전반적인 상황과 이들의 연결지점들을 장선우 구술 안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본 구술이 1970~80년대 청년들에게서 영화문화가 어떻게 변화되었고, 또 그 안에서 한국 주재 해외문화원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예술영화 운동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키워드
등록된 키워드가 없습니다.
업데이트 내역
업데이트 내역이 없습니다.
연계자료
자료 시각화
아래 분류를 눌러 보세요. 이 컬렉션의 소장자료가 어떤 분야·유형·소속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좌우로 밀어 전체 자료를 확인하세요.
참고자료 · 인용 안내
등록된 참고자료 및 인용 안내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