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컬렉션
부산지역 극장 사진 컬렉션
기관 보유 부산지역 극장(28개)의 사진(184점)으로 구성 (2022년도 학예연구팀 컬렉션 용역사업/연구자: 김도연)
- 공개일
- 2022-10-13
- 업데이트일
- 2025-12-02
컬렉션 해제
해제 다운로드 (PDF)1876년 조선은 일본과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 부산이 최초로 개항을 하고, 부산항 인근에는 일본전관거류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열린 마당에서 극을 즐기던 조선인과 달리, 일본인들은 지붕과 벽이 있는 닫힌 공간을 만들어 공연을 보았습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실내극장은 1889년 부산의 요술옥으로, 이는 1892년 설립된 인천의 인부좌보다 그 시기가 빠릅니다. 조선에서 최초로 애니메이션과 유성영화가 상영된 곳도 부산이었습니다. 1918년 5월 11일 상생관에서는 애니메이션 <원숭이와 게의 전쟁 サルとカニの合戦>(기타야마 세이타로, 1917)이, 1929년 7월 18일 행관에서는 유성영화인 <복교 戾橋>(마키노 마사히로, 1929)가 상영되었습니다. 이는 부산이 개항장으로 가장 빠르게 일본에서 근대 문물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비록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한국에 가장 먼저 영화가 도착한 곳은 부산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광복기까지 부산에는 6만 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극장업도 번창하였습니다. 개항부터 1945년 광복까지 부산에서 문을 연 극장 수는 총 23개소에 달합니다. 일본전관거류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극장가는 남포동 극장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인근 지역인 중앙동, 영도로도 퍼져나갔습니다. 광복 후, 남겨진 적산극장들은 한국인에게 불하되어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계속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일부 극장은 임시수도 국회의사당, 피난민 대피소, 전시연합대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1천 석이 넘는 대형 단관극장이 여럿 생겨났으며,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와 산업화 시대가 겹쳐지면서 부산 시내 극장의 수는 급증하였습니다. 공장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극장가가 형성되었고, 주거지역에도 극장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영화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많은 극장이 폐관되었고, 1980년대 소극장 시대에 그 수가 반짝 늘어났으나, 2000년대 멀티플렉스 시대가 되면서 부산의 향토 극장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부산지역 극장의 역사는 한국영화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합니다.

<부산지역 극장 사진 컬렉션>은 부산에 존재했던 많은 극장 중 28개 극장에 대한 184점의 사진(복본 제외)을 정리한 것입니다. 시대로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역으로는 부산의 대표적인 극장가인 남포동부터 변두리 지역까지 포괄하고 있어 다양한 시대, 다양한 위치에 존재했던 극장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영화를 향유하던 공간인 ‘극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영화사의 한 부분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지역 극장 사진 컬렉션> 속 대부분의 자료는 故 홍영철(1946~2016)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이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 때 부산에 정착하였고, 1971년 한국영화자료연구원을 설립해 평생 방대한 영화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가 남긴 자료들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기증되었다가 부산시(부산영화체험박물관)로 이관되었으며, 그중 일부의 사진 자료들이 2019년, 부산시(부산영화체험박물관)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업무협약을 통해 디지털 아카이빙되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디지털 보존돼있는 故 홍영철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 소장 사진 중 부산지역 극장을 담은 사진들이 이 컬렉션을 통해 비로소 공개되는 것입니다. 한 장씩 사진을 넘기다 보면 그가 카메라를 들고 부산의 극장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한국영화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될 것입니다. 그 열정과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개별 자료에 대한 세부 정보 및 상세 해설은 아래 ‘자료 목록’의 자료명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광복기까지 부산에는 6만 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극장업도 번창하였습니다. 개항부터 1945년 광복까지 부산에서 문을 연 극장 수는 총 23개소에 달합니다. 일본전관거류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극장가는 남포동 극장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인근 지역인 중앙동, 영도로도 퍼져나갔습니다. 광복 후, 남겨진 적산극장들은 한국인에게 불하되어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계속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지자 일부 극장은 임시수도 국회의사당, 피난민 대피소, 전시연합대학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1천 석이 넘는 대형 단관극장이 여럿 생겨났으며,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와 산업화 시대가 겹쳐지면서 부산 시내 극장의 수는 급증하였습니다. 공장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극장가가 형성되었고, 주거지역에도 극장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영화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많은 극장이 폐관되었고, 1980년대 소극장 시대에 그 수가 반짝 늘어났으나, 2000년대 멀티플렉스 시대가 되면서 부산의 향토 극장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부산지역 극장의 역사는 한국영화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합니다.

<부산지역 극장 사진 컬렉션>은 부산에 존재했던 많은 극장 중 28개 극장에 대한 184점의 사진(복본 제외)을 정리한 것입니다. 시대로는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지역으로는 부산의 대표적인 극장가인 남포동부터 변두리 지역까지 포괄하고 있어 다양한 시대, 다양한 위치에 존재했던 극장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영화를 향유하던 공간인 ‘극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영화사의 한 부분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지역 극장 사진 컬렉션> 속 대부분의 자료는 故 홍영철(1946~2016)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이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 때 부산에 정착하였고, 1971년 한국영화자료연구원을 설립해 평생 방대한 영화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가 남긴 자료들은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기증되었다가 부산시(부산영화체험박물관)로 이관되었으며, 그중 일부의 사진 자료들이 2019년, 부산시(부산영화체험박물관)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업무협약을 통해 디지털 아카이빙되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디지털 보존돼있는 故 홍영철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 소장 사진 중 부산지역 극장을 담은 사진들이 이 컬렉션을 통해 비로소 공개되는 것입니다. 한 장씩 사진을 넘기다 보면 그가 카메라를 들고 부산의 극장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한국영화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될 것입니다. 그 열정과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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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연구: 김도연(부산독립영화협회 회원, 『영화대화』 저자)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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