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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구술 컬렉션
구술 컬렉션

정지영 구술 컬렉션

2024년 6월 28일부터 10월 7일까지 8회차에 걸쳐 연구자 남기웅이 진행한 정지영 구술 생애사 구술채록문의 온라인 서비스용 편집본. 도서 1건/동영상 17건/현장스틸 77건

공개일
2025-06-04
업데이트일
2025-12-31

컬렉션 해제

 구술 개요


- 구술 진행

 ※ 진행시간은 촬영된 영상의 러닝타임을 기준으로 함.

 본 구술은 2024년 6월 28일부터 10월 7일까지 총 8회차에 걸쳐 연구원 남기웅이 진행한 영화감독 정지영의 생애사 구술채록문을 편집한 것입니다. 

   1970년대 초 김수용의 조연출로 영화계에 입문한 구술자 정지영은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습니다. 첫 영화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구술자는 MBC에서 <베스트셀러극장>을 연출했습니다. 당시 KBS <TV문학관>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이에 맞서는 프로그램으로 MBC에서 기획한 것이 바로 <베스트셀러극장>이었습니다. <베스트셀러극장>은 정지영 외에도 박철수, 조문진, 이기환과 같은 영화계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들을 섭외하여 수준 높은 작품들을 다수 선보였습니다. 정지영 감독은 이중 <춤추는 맨발>, <잃어버린 출발>, <완장>, <색시공> 등의 작품을 연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영화 작업을 진행하여 <추억의 빛>(1984)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당시 12개로 제한된 제작사들은 한국영화를 단지 외화 쿼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고 이 영화는 홍보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심지어 <거리의 악사>(1987)는 검열로 인해 몇몇 장면들이 삭제되며 온전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상영될 수 없었습니다.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정지영, 1982) 촬영 전 고사를 지내는 모습

  같은 해 4월 13일 호헌조치가 선포되며 전국의 대학생과 주요 단체들의 성명문이 나올 때, 구술자는 ‘영화인들도 뜻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몇몇 젊은 영화인들을 모아 영화인시국성명을 발표합니다. 이런 활동으로 구술자는 영화계 변혁의 대표성을 갖게 되었고 당시 영화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충무로로 뛰어든 청년들이 이후에는 그와 함께 하게 됩니다. 이들은 구술자에게 UIP 직배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알려주었고, 곧 구술자를 매개로 충무로 영화인들과 영화운동 청년들은 힘을 모아 직배에 대항했습니다. 그는 ‘스크린쿼터감시단’을 결성하고, ‘한국영화연구소’를 통해 해외 영화 정책 사례들을 조사하며, 한국영화 정책이 영화 진흥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힘썼습니다. 이는 구술자가 일찍이 <추억의 빛>과 <거리의 악사>를 연출하며 한국영화 정책의 불합리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그 결과 1990년대 초 ‘직배저지투쟁’이 ‘영화진흥법 제정’과 ‘검열 철폐’ 운동으로 진일보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음모 저지투쟁 선포대회에서(출처: 양기환 기증자료)

  그러나 구술자는 겸손하게 그 모든 변혁의 움직임은 자기 자신이 일으킨 것이라기보다 시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요구였다고 말합니다. 2000년대에는 몇 편의 작품 연출을 계획했지만, 매번 기획 단계에서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부러진 화살>로 그는 다시 복귀했습니다. 구술이 진행되고 있던 때에도 그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를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사회비판적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구술자는, 그의 영화 이력에서도, 그리고 영화 정책을 바꾸기 위해 싸워왔던 삶의 이력에서도 그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려 8회차에 걸쳐 진행되는 정지영의 구술에서는 1970~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한국영화산업의 역동적 변화의 면면들을 두루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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