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 컬렉션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
촬영감독 정일성이 1992년과 2020년, 두 번에 걸쳐 기증한 3,007점(복본 제외)을 정리한 컬렉션
- 공개일
- 2025-07-25
- 업데이트일
- 2026-10-28
컬렉션 해제
해제 다운로드 (PDF)정일성 촬영감독은 1954년부터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영화계에서 활동하며 모아온 자료들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했습니다. 1992년과 2020년, 두 번에 걸친 그의 기증으로, 한국영상자료원에는 1,822장의 사진과 875권의 간행물(국내외 발간 도서 및 정기간행물 등), 120권의 시나리오, 190점의 상패/트로피·기념/소장품·촬영 장비 등의 자료가 모여 총 3,007점(복본 제외)으로 구성된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컬렉션에는 그가 영화계에서 보낸 고난의 시절과 영광의 순간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1950년대에 열악한 촬영 세트장에서 단정하게 흰 장갑을 끼고 카메라를 만지는 순간부터 2000년대에 턱시도 차림으로 칸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선 순간까지, 그가 기증한 사진들만으로도 한국영화의 기술적, 위상적 변화의 흐름이 파악될 정도입니다.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은 자료의 맥락과 성격을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컬렉션 자료를 형식 면에서 [사진], [간행물], [시나리오], [상패/트로피], [기념/소장품], [서신/전보], [기사/스크랩] 등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또다시 시기별(1930년대~2020년대, 시기 혼합, 미상) 그리고 내용별[작품(참여작), 작품(참여 외), 영화제/행사, 기타활동, 개인 및 생애, 기타]로 분류됩니다.
정일성은 시대마다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에 인장을 찍듯, 아름다운 마스터 쇼트(master shot)와 풀 쇼트(full shot) 그리고 신(scene)을 남겼습니다. 그 인장들은 아픔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이 땅의 공간과 시간을 오롯하게 보아온 그의 구도자 같은 태도에서 나온 듯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척박한 땅을 닦아 길을 만들듯, 그는 1950년대부터 모아온 자료들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며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을 만들었습니다. 이 컬렉션은 정일성 촬영감독이 영상으로 남긴 많은 길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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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렉션에는 그가 영화계에서 보낸 고난의 시절과 영광의 순간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1950년대에 열악한 촬영 세트장에서 단정하게 흰 장갑을 끼고 카메라를 만지는 순간부터 2000년대에 턱시도 차림으로 칸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선 순간까지, 그가 기증한 사진들만으로도 한국영화의 기술적, 위상적 변화의 흐름이 파악될 정도입니다.
<가거라 슬픔이여> 촬영 현장: 정일성, 조긍하, 김영달 등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기념: 최민식, 정일성, 임권택, 이태원, 안성기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은 자료의 맥락과 성격을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컬렉션 자료를 형식 면에서 [사진], [간행물], [시나리오], [상패/트로피], [기념/소장품], [서신/전보], [기사/스크랩] 등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또다시 시기별(1930년대~2020년대, 시기 혼합, 미상) 그리고 내용별[작품(참여작), 작품(참여 외), 영화제/행사, 기타활동, 개인 및 생애, 기타]로 분류됩니다.
구성과 규모
① 시기/내용별
② 형식/내용별
이 중 가장 큰 분포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사진]입니다. 컬렉션의 60%가량을 차지하는 1,822장의 사진은 청년 시절인 1940년대부터 영화계에 입문한 1950년대, 그가 영화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1960년대부터 2000년대, 그의 필모그래피 후반에 해당하는 2010년대 등 시기적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그가 참여한 작품에 관한 사진부터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 등에서 찍은 사진, 젊은 시절을 비롯해 일상에서 지인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컬렉션에서 [사진]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료는 [간행물]입니다. 대부분 일본어로 된 영화 전문 서적(도서)과 잡지(정기간행물)로, 총 875점에 달하는 간행물 자료는 정일성 촬영감독의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이 되는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중학 시절까지 일본에서 지냈습니다. 해방 후에 한국으로 귀환한 그는 17세에 처음으로 한글을 배웁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기, 기량을 펼칠 기회가 전무한 공학도였던 그는 부산 미 공보원 서고과의 서가 담당 직원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아무 준비 없이 영화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대구로 출장을 간 그는 우연히 서울대 선배인 촬영감독 정인엽을 만나 대구 공군비행장에서 촬영 중인 <출격명령>(홍성기, 1954)의 촬영조수를 제안받은 것입니다. 인기 배우 염매리가 출연한다는 말에 바로 짐을 챙겨 대구로 가 <출격명령> 촬영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땅한 영화 교육 기관이 없던 시절, 당시 전문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랬듯, 의지할 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전문 서적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책들을 통해 영화 이론과 기술, 미학과 사조, 세계영화의 흐름에 대한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2017년, 정일성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한 구술에서 당시 직장 상사였던 미국인 공보원장이 일본에서 군용 소포로 가져와 그에게 보내준 책 중 20여 권이 남아있다고 증언했는데, 아마도 그 책들 역시 이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의 간행물 대부분은 기증자 정일성 촬영감독의 요청에 따라, 영화를 공부하는 많은 이들이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국영상자료원의 보존고가 아닌, 영상도서관(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에 비치되었습니다.
[사진]과 [간행물] 외에도, 그가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시나리오]와 [상패/트로피], [위촉장/증서], [제작실무자료] 등은 모두, 그가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와도 같습니다.
“내가 자신이 있는 거예요.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이 땅의 역사와 이 땅의 고난과 이 땅의 고통을 아는 사람을 찍고 싶은 거예요. (...) 나는 어느 장소에서 어떤 시각을 통해서 어떻게 찍어서 아픔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거는 자신 있는데 (...) 그래서 나는 아픔의 드라마를 찍고 싶어요. 이야기 구조의 드라마를 찍고 싶은 게 아니고, 나라는 마음이, 대상이란 마음을 찍고 싶은 거예요.”
컬렉션에서 [사진]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료는 [간행물]입니다. 대부분 일본어로 된 영화 전문 서적(도서)과 잡지(정기간행물)로, 총 875점에 달하는 간행물 자료는 정일성 촬영감독의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이 되는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중학 시절까지 일본에서 지냈습니다. 해방 후에 한국으로 귀환한 그는 17세에 처음으로 한글을 배웁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기, 기량을 펼칠 기회가 전무한 공학도였던 그는 부산 미 공보원 서고과의 서가 담당 직원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아무 준비 없이 영화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대구로 출장을 간 그는 우연히 서울대 선배인 촬영감독 정인엽을 만나 대구 공군비행장에서 촬영 중인 <출격명령>(홍성기, 1954)의 촬영조수를 제안받은 것입니다. 인기 배우 염매리가 출연한다는 말에 바로 짐을 챙겨 대구로 가 <출격명령> 촬영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땅한 영화 교육 기관이 없던 시절, 당시 전문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랬듯, 의지할 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전문 서적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책들을 통해 영화 이론과 기술, 미학과 사조, 세계영화의 흐름에 대한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2017년, 정일성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한 구술에서 당시 직장 상사였던 미국인 공보원장이 일본에서 군용 소포로 가져와 그에게 보내준 책 중 20여 권이 남아있다고 증언했는데, 아마도 그 책들 역시 이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의 간행물 대부분은 기증자 정일성 촬영감독의 요청에 따라, 영화를 공부하는 많은 이들이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국영상자료원의 보존고가 아닌, 영상도서관(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에 비치되었습니다.
[사진]과 [간행물] 외에도, 그가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시나리오]와 [상패/트로피], [위촉장/증서], [제작실무자료] 등은 모두, 그가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와도 같습니다.
“내가 자신이 있는 거예요.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이 땅의 역사와 이 땅의 고난과 이 땅의 고통을 아는 사람을 찍고 싶은 거예요. (...) 나는 어느 장소에서 어떤 시각을 통해서 어떻게 찍어서 아픔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거는 자신 있는데 (...) 그래서 나는 아픔의 드라마를 찍고 싶어요. 이야기 구조의 드라마를 찍고 싶은 게 아니고, 나라는 마음이, 대상이란 마음을 찍고 싶은 거예요.”
『2017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17-4 <생애사> 정일성』(이정아, 한국영상자료원, 2017, pp.106-107.)
정일성은 시대마다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에 인장을 찍듯, 아름다운 마스터 쇼트(master shot)와 풀 쇼트(full shot) 그리고 신(scene)을 남겼습니다. 그 인장들은 아픔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이 땅의 공간과 시간을 오롯하게 보아온 그의 구도자 같은 태도에서 나온 듯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척박한 땅을 닦아 길을 만들듯, 그는 1950년대부터 모아온 자료들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며 “촬영감독 정일성 컬렉션”을 만들었습니다. 이 컬렉션은 정일성 촬영감독이 영상으로 남긴 많은 길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해제)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개별 자료에 대한 세부 정보 및 상세 해설은 아래 ‘자료 목록’의 자료명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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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연구: 배수경(영화연구자)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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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추가 · 갱신된 자료-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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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표기 예시] 「자료명」(관리번호 xxxxxxx),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명』, 웹페이지 주소(최종 확인일: 0000.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