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만주국의 사상전과 만주영화협회, 1937~45
관리번호 TKC03071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논문
- 주제구분
- 연구기술
기본 정보
- 본제목
- 만주국의 사상전과 만주영화협회, 1937~45
- 부제목
- -
- 대등제목
- -
- 국가구분
- 국내
- 생산일자
- 2007-**-**
- 언어
- 한국어
- 크기(mm)
- -
- 페이지
- 109
- ISBN/ISSN
- -
- 판차
- -
- 마스터파일
- -
- 생산자
- 홍수경 (연세대학교 홍수경 석사 논문 저자)
- 내용
- (논문요약)[국문초록] 본 논문은 국책(國策)영화회사 만주영화협회의 활동과 의미를 전간기(戰間期) 사상 전의 대두와 미디어의 국가적 재편성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하고자 한 시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전과 선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수립은 세계 각 국이 추진하고 있던 중심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특히 강렬한 대중적 호소력을 갖는 영화는 대중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효과적인 정치적 무기로 부상하고 있었다. 만주국의 영화는 국가적 영화통제 시스템과 대중문화의 정치적 장악이 유례없이 강도 높게 추진된 사례를 보여주며, 아울러 미디어를 통한 내셔널 아이덴티티 만들기 과정의 작위적 측면을 드러내는 역사적 실례를 제공해준다. 만주국은 자신의 존재의의와 정치적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데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 일종의 '선전국가'였다. 관동군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으로 성립한 만큼, 독립국으로서의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해야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국 5년 후 중일 전쟁의 발발로 전면전의 한 가운데에 뛰어 들어간 만주국은 국방국가 건설과 총력전 수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전쟁의 파급력이 전투현장을 넘어서 후방의 일상적 공간으로까지 확대된 총력전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이해와 자발적 협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선전'은 행정, 정치, 교육 더 나아가 국민적 정서를 육성할 역할까지 부여받았던 것이다. 만주국에서 건국 당초부터 정치·군사에 밀착한 존재였던 영화는 사상전의 중요성이 보다 강조된 중일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 국가의 통합적, 일원적 기획과 통제 하에 놓이게 된다. 1937년 8월 만영의 탄생은 국가가 영화라는 최첨단 선전매체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초고속으로 육성시키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목차
목차 I. 머리말 = 10 II. 만주국 '영화신체제'와 '만주영화' = 20 1. '선전국가'의 사상전과 영화 = 20 2. 전시 영화정책의 혁신적 모델 = 32 3. '만주영화'의 아시아적 지향 = 42 III. '만주국 아이덴티티'의 창조와 확장 = 51 1. 일상의 동원과 국민 창출 = 51 2. '민족협화'의 모색과 갈등 = 62 3. '흥아영화'와 '대륙영화연맹'구상 = 80 IV. 맺음말 = 102 참고문헌 = 107 ABSTRACT = 114
소장정보 2
TKC03071_01
- 입수처
- 국립중앙도서관
- 입수방법
- 기증
- 입수일자
- 2008-12-17
- 그룹정보
- -
- 공개구분
- 방문열람
- 복사/대여
- -
- 보관위치
- 영상도서관(상암)
TKC03071_02
- 입수처
- 국립중앙도서관
- 입수방법
- 기증
- 입수일자
- 2008-12-17
- 그룹정보
- -
- 공개구분
- 방문열람
- 복사/대여
- -
- 보관위치
- 문헌보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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