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1930년대 연극·영화의 대중성 담론과 매체 인식 연구
관리번호 TKC03769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논문
- 주제구분
- 연구기술
기본 정보
- 본제목
- 1930년대 연극·영화의 대중성 담론과 매체 인식 연구
- 부제목
- -
- 대등제목
- -
- 국가구분
- 국내
- 생산일자
- 2011-**-**
- 언어
- 한국어
- 크기(mm)
- -
- 페이지
- 166
- ISBN/ISSN
- -
- 판차
- -
- 마스터파일
- -
- 생산자
- 이광욱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석사 논문 저자)
- 내용
- (논문요약)[국문초록] 본 논문은 '대중성'이란 가치평가 기준이 부각되게 된 1930년대 연극 비평의 성격을 동시기 영화 비평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극의 사회적 공리성에 근거한 1920년대의 계몽주의적 연극론자들이 상정했던 관객은 일방적인 교화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관객은 연극의 핵심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게 되며, 잠재적 관객인 '대중'을 획득하는 문제 역시 부각되게 되었다. 이처럼 '대중성'이라는 개념은 시대를 구분짓는 중요한 연극사적 기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선행연구에서 연극의 '대중성'은 연극에 대한 원론적 이해도가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제기된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극장을 둘러산 외적 조건의 변화와 이에 따른 예술 생산자들의 대응을 총체적으로 살필 때에만 온전히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기의 연극과 영화는 1. 추상화된 문자에 기반한 독서대중과는 차별화되는 수용감각을 지닌 관객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였다는 점, 2. 오락성과 교화성을 동시에 지닌 유력한 계몽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 3. 자본과 기술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집단적인 예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더욱이 식민지기의 극장은 대부분 연극과 영화를 동시에 상연 또는 상영하는 곳이었으며, 연극과 영화는 극장안에서 경쟁관게에 있던 매체였기에 양자는 서로의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본다. 이에 본고에서는 영화와 연극이 상호간에 긴밀한 담론장을 형성했으리라는 전제 하에 영화와의 매체적 영향관계 속에서 연극 비평의 변모과정을 재맥락화하고자 했다. 2장에서는 영화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형성된 '관객대중'의 존재와 '문화산업'의 역학이 연극의 대중성 담론에 가로놓여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특히 희곡이 '무대화' 과정을 강조했던 유치진, 박영호, 송영 등의 창작과 비평활동은 활자화된 희곡에 긴박된 기존의 극작 관습에서 도외시되었던 관객대중의 위상을 제고하는 게기를 제공했다. 그 결과, 관객은 교화해야 할 대상에서 극적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존재로 격상되게 되었고, 연극에서의 오락성은 매체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식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근대극의 관습이 보편화시킨 '실내극장'에서의 상연은 영화 상영의 기회비용에 상응하는 대관료와 이를 충당하기 위한 수익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연극 역시 영화가 주도하던 문화산업의 장으로 편입되게 됨을 의미했으며, 이는 1930년대의 연극계가 신극/흥행극을 막론하고 직업극단의 형태를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계몽주의적 연극론은 오락성을 사회적 공리성과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자 했던 영화 담론에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점차 대중성을 미학적 지표를 인식해 나가게 된다. 3장에서는 매체적 혼종성을 띠던 무성영화기 극장의 상영/상연의 관습이 발성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연극과 영화의 독자적 매체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영화의 인기는 상당부분 스펙터클한 시각적 이미지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연극은 영화의 대중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특히, 막간, 연쇄극 등의 상연은 영화적 특성을 연극의 흥행전략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역시 연극적 공연성과의 결합을 통해 특수한 성격을 구축해 나갔으며, 이는 식민지 조선의 극장에서 무성영화 상영의 관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특히, 변사, 악사와 같은 '소리 여행자'들의 존재는 복제매체로서의 화면과 인간매체의 현존성이 결합된 무성영화기 극장의 '매체적 혼종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상연/상영은 예술적이지 못한 것, 전근대적인 것으로 비판받았으나, 관객 대중의 실제적인 수요와 더불어 이러한 경향은 193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발성영화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진 '디제시스의 분리'는 이러한 '매체적 혼종성'을 주변화시키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발성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영화 디제시스 내부로 일원화시키면서 기존의 소리 연행자들을 시대착오적 관습의 결과물로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초의 조선어 발성영화인 <춘향전>이 상영된 1935년을 전후해서는 매체적 특수성을 반영한 연극과 영화가 더욱 대중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4장에서는 연극과 영화의 대중성 담론이 발성영화가 촉발한 극장환경의 변화와 결합되게 되면서 '매체적 특수성'에 따른 '팬덤'의 확보를 추구하게 되는 변모를 보이게 됨을 밝혔다. 즉, 보다 연극다운 연극, 영화다운 영화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차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 1 1.1 연구사 검토 및 문제제기 = 1 1.2 연구의 시각 = 14 2. '관객대중'의 수용감각 인식과 '오락적 대중성'의 담론화 = 26 2.1 무대화의 강조를 통한 '독서'와 '관람'의 수용감각 차이 인식 = 26 2.2 대중문화산업의 형성과 극장의 생산조건에 대한 자각 = 41 3. 발성영화의 도입과 극장환경의 변화 인식 = 64 3.1 무성영화기 극장의 매체적 혼종성과 연극, 영화의 결합 = 64 3.2 조선어 발성영화의 탄생과 미분화된 극장체험에 대한 주변화 = 84 4. 연극, 영화의 매체적 특수성 강조와 독자적 팬덤의 추구 = 107 4.1 영화 관객층의 재편과 예술성 제고를 위한 '문학성' 수용 = 107 4.2 '리얼리즘' 극양식의 수정과 '조선적 특이성'의 부각 = 129 5. 결론 = 153 <참고문헌> <Abstract>
소장정보 1
TKC03769_01
- 입수처
- 국회도서관
- 입수방법
- 기증
- 입수일자
- 2012-12-14
- 그룹정보
- -
- 공개구분
- 방문열람
- 복사/대여
- -
- 보관위치
- 영상도서관(상암)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