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식민지 근대성과 조선영화 - <순종황제 인산습의>와 <아리랑>을 중심으로
관리번호 TKC03856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논문
- 주제구분
- 연구기술
기본 정보
- 본제목
- 1920년대 식민지 근대성과 조선영화 - <순종황제 인산습의>와 <아리랑>을 중심으로
- 부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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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등제목
- -
- 국가구분
- 국내
- 생산일자
- 2013-**-**
- 언어
- 한국어
- 크기(mm)
- -
- 페이지
- 132
- ISBN/ISSN
- -
- 판차
- -
- 마스터파일
- -
- 생산자
- 박혜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과정 영상원 영상이론과 한국영화사전공 석사 논문 저자)
- 내용
- (논문요약)[국문초록] 본 논문은 1920년대 식민지 근대성과 조선영화 출현 과정을 3.1운동 이후 쏟아진 세계 개조의 담론, 식민도시의 가시화, 당대 거리 곳곳에서 펼쳐진 거리 이벤트 속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때 식민지 근대성은 근대의 양가성(해방과 억압)과 식민의 양가성(수탈과 문명화)을 동시에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종의 문제틀이다. 조선에서 1920년대 초중반은 여러 이념들이 뚜렷한 정향성 없이 쏟아지던 ‘이념의 태동기’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3.1운동 이후 세계사조의 급류와 근대라는 괴물 앞에서 세계에 대한 상(想)을 세우고 자신의 존재를 세우기 위해 다양한 이념들을 실험, 모색하였다. 이 시기 조선인들이 받아들인 ‘지식으로서의 세계상’은 식민지 조선의 개조와 사회운동을 추동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식민지 조선에서의 현실과 불협화음을 빚어내며 식민지 근대 주체의 분열과 우울, 광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조선영화의 첫 장이 열린다. 초기 조선영화는 제작 기술 및 자본 등의 물적 토대가 부족한 가운데 연극 속에 활동사진 장면을 삽입한 키노드라마 형식, 실사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영화 제작 기술이 미숙해 편집과 커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영화 관람 환경 역시 제도화되기 이전이라 관객들의 소음과 변사들의 입담으로 극장 안은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당대 영화 환경의 특이성이라 할 수 있는 영화미학의 불균질함과 파편성, 관람환경의 집단성과 소란스러움 등은 영화 제작 주체의 의도와 무관하게 다양한 해석의 자리를 남겼다. 벤야민은 영화 매체가 현실에 정치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미학적 특성과 대중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해방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비록 영화가 파시즘과 결합하기도 하였으나 ‘매체로서의 영화’가 갖는 잠재적 해방의 가능성과 정치적 영향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 조선영화 역시 일본의 지배적인 시각 정치 속에 포섭되기도 하고 당대 극장에서의 독특한 관람 방식 및 영화 매체의 파편성과 산만한 지평 속에서 ‘생민(生民)의 활동’과 당대 역사에 대한 ‘실감(實感)’을 촉구하는 식민지 공공영역(public sphere)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1919년 3.1운동 이후 최초의 조선영화 <의리적 구토>가 개봉된 시기부터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된 시기를 주 분석 시기로 삼는다. 이를 위해 1919년 고종의 죽음과 1926년 순종의 죽음을 이 시기 변화의 계기가 된 중요한 변곡점으로 삼고자 한다. 시각 매체, 특히 사진과 영화사에서 간과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대한제국과의 관련 속에 그것이 전유되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과 조선의 왕은 일한병합 이후 상징적 위치로 잔존해 있었지만 식민지 근대 과정에서 전근대적인 과거의 유령이자 역사 속에 사라진 존재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대한제국과 왕권은 지속적으로 역사적 국면에 출몰하곤 하였다. 이를 ‘조선 황실 팬텀(phantom)'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조선 황실 팬텀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흐름과 군중의 모습을 거리 곳곳에서 가시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26년 순종의 국장 행렬은 식민도시의 거리에서 시각화되며 다양한 군증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의 행렬을 담은 사진과 영화가 제작 유포돼 근대화의 변화 속에 매장된 국민 국가 수립의 좌절을 다시 한 번 집단적 기억의 장으로 불러냈다. 순종 인산 장면을 담은 실사영화 <순종인산습의>가 보여준 왕의 죽음에 따른 집단적인 슬픔과 애도의 물결은 같은 해 개봉된 <아리랑>에서의 식민지인의 비애와 광기, 살인과 판타지로 이어진다. 본 논문에서 대한제국과 조선의 왕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의 역사적 의미를 과대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탈근대와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이 시기 식민지 근대의 복잡한 시각 정치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선영화의 자리를 재질문하고자 함이다. (영문초록)This thesis examines the colonial modernity in the 1920s and the process of the emergence of Korean Cinema by looking into the discourse of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visuality of colonial cityscape, and various street event held all over the country in those days. The colonial modernity functions as the problematic to critically investigate into both the ambivalence of the modernity(liberation and oppression) and that of colonization(exploitation and civilization) at the same time. The early and mid 1920s in Korea was a period of emerging ideas and ideologies with which the society was deluged with no clear direction. Since the March 1st Movement, the intellectuals have tried to find and experiment these new ideas and ideologies in order to draw their own picture of the world and establish their identity being lashed by the turbulent currents of new movements of the world and the modernity. 'The world picture as a knowledge' which Korean have adopted during this time movements while also occurring conflicts with the reality of colonized Korea which caused dissociation, depression and insanity of the colonized Korea which caused dissociation, depression and insanity of the colonized modern subjectivity. In this situation, the first scene of Korean Cinema has opened. The main form of the early Korean films is a kino-drama, a live theatrical production against the backdrop of film projected on stage because of the lack of technology and capital for producing a complete motion picture. At that time, the films have been not cut properly because of the lack of technique of editing and the theatre is filled with the loud noise from an audience and comments of a silent-film narrator since the environment of watching a film was not governed by any rules and conventions yet. However,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cinematic environment of that time such as heterogeneity and fragmentation of aesthetics of cinema and viewing environment characterized by the collectivity and spectatorial noises leave some room for diverse interpretations regardless of what filmmakers intend to their audiences. Walter Benjamin recognized that cinema would bear a potential for emancipation since it had both aesthetic characteristics and popular appeal to change political conditions in the real world. Although there was a historical fact cinema became a vehicle for fascist agitation, the potential for liberation and the political influence as a media cannot be denied. The early Korean films have been subsumed in dominant politics of visuality of the Japanese empire and they also have acted on a public sphere to urge people to bo keen on movements for people's livelihoods and to realize their historical situations based on the particular cinematic characteristics such as fragmentation and distraction of cinematic media and the unique way audiences watched films in those days.
목차
Ⅰ. 들어가며 = 1 1. 연구배경 및 목적 = 1 2. 연구 대상 및 방법 = 8 3. 논문의 구성 = 18 Ⅱ. 1920년대 식민지 근대성의 동학 = 20 1. 3.1운동 이후 식민지 근대의 전개 = 20 2. 문화정치로의 전환과 식민도시의 형성 = 26 3. 거리에서 본 경성과 근대 도시 체험 = 29 4. '조선 황실 팬텀'과 '개발 없는 개발' = 34 Ⅲ. 조선영화의 출현과 '실감(實感)'의 구축 = 38 1. 영화보기의 경험과 초기 실사영화: '생민(生民)의 활동'과 '실감(實感)' = 38 2. 집단적 경험과 군중/대중의 형성: 거리와 극장, 그 사이에서 = 50 Ⅳ. '조선 황실 팬텀'과 <순종황제 인산습의> = 65 1. 대한제국 황실 패전트와 근대화 프로젝트 = 65 2. 대한제국의 몰락과 황실 '팬텀' = 81 3. 식민도시 경험과 순종 인산 패전트 = 88 4. 인산 실경 <순종황제 인산습의> 분석 = 96 Ⅴ. 대중영화 <아리랑>의 출현 = 108 1. <아리랑>의 정전화와 재역사화 = 108 2. '시대적 기분'과 공통 감각 = 110 3. <아리랑>의 판타지와 실감 = 112 Ⅵ. 나오며 = 119 <사진> 부록 = 120 참고문헌 = 124 Abstract = 130
소장정보 2
TKC03856_01
- 입수처
- 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 입수방법
- 수집
- 입수일자
- 2014-10-02
- 그룹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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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구분
- 방문열람
- 복사/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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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관위치
- 문헌보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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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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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도서관(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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