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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식민지 조선의 극장과 '소리'의 문화 정치

관리번호 TKC03753

실물구분
아날로그
매체유형
논문
주제구분
연구기술

기본 정보

본제목
식민지 조선의 극장과 '소리'의 문화 정치
부제목
-
대등제목
-
국가구분
국내
생산일자
2010-**-**
언어
한국어
크기(mm)
-
페이지
240
ISBN/ISSN
-
판차
-
마스터파일
-
생산자
이화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논문 저자)
내용
(논문요약)[국문초록] 이 논문은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제국 체제의 비대칭적인 이중 언어 상황(diglossia)에서 전개된 토키 이행의 역사적, 언어적, 정치적 조건이 조선영화의 자기 구성과 좌표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는 것이다. 토키 이행은 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관련된 모든 단계가 무성영화 시스템에서 발성영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토키 이행을 거치며 무성영화 상영의 현전성과 개별성, 우연성은 배제되고,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필름은 동일한 텍스트로 수용되는 상영의 표준화가 정착된다. 식민지 조선의 경우, 토키 이행은 언어 및 미디어 테크놀로지 환경의 심각한 불균등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오랫동안 전개되었으며, 극장과 이를 둘러싼 문화적 지형에 역동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무성영화기 조선의 극장은 식민지의 이원적인 사회적, 공간적 분리와 이중 언어 환경으로 인해 ‘동족(어) 공간’으로 분리되는 경향을 갖고 있었으며, 그 내부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조선인임’과 ‘식민지인임’을 느끼도록 하는 잠재적 계기를 내포한 공간이었다. 극장에 현전하는 변사의 목소리와 말은 관객들을 정서적 공동체로 묶고, 공통의 감각에 종속시키는 공명(共鳴)을 만들어냈는데, 때로 이러한 공명은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성영화가 도래한 후, 외국영화의 수용을 위해 도입된 일본어 자막은 조선에서의 영화 수용을 이중적으로 굴절시켰다. 일본어 해득력이 없는 조선인들을 외국영화의 수용에서 배제하는 한편으로, 리터러시(literacy)에 따라 관람 경험의 균열을 초래한 것이다. 일본어 자막이 ‘동족(어) 공간’을 벗어나 월경(越境)할 수 있는 통로가 됨으로써, 토키 이행은 모어(母語)의 소외를 통한 민족적 불평등뿐 아니라 동일한 언어 공동체 안에서도 계층과 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야기했다. 이 기간을 거치며 식민지 조선의 극장이 가지고 있던 ‘동족(어) 공간’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기능은 둔화되고, 관객의 계층과 취향이 민족적 구획을 침식하게 되었다. 토키 도래 이후에도 극장은 여전히 민족적 동질성에 기반해 ‘참여하는 신체들’의 집합적인 공간이었지만, 그 한편에는 취향이라는 문화적 구별의 표식이 그 집합성을 해체하는 탈정치화의 흐름도 존재했다. 1930년대 중반 조선영화계는 토키의 지역화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영화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한편으로, 조선과 일본에 자기완결적인 상품으로서 조선영화를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조선영화인은 내셔널리티에 대한 자의식에서 조선적인 내러티브와 미장센을 구성하고, 조선영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시도들-이를테면, 동시대 문학작품의 영화화, 조선적 영화음악의 사용, 사운드 몽타주 실험 등-을 펼치는데, 이러한 시도들은 조선 발성영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과 결부된 것으로서, 당대의 문화 장(場) 내에서 문화 간 이행과 교섭, 번역의 문제들을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민족과 문화의 기억을 구성하는 이미지와 소리, 이야기를 영상언어로 번역하고, 외국어 영화에서 소외되었던 비엘리트 계층이나 타지(他地)에 거주하는 재외조선인들뿐 아니라 식민지 영화에 대해 이그조틱한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에 이르기까지, 조선영화의 관객을 내외적으로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토키 이행 과정에서 동족(어) 공간으로서 극장의 결집성은 헐거워진 반면, 필름에서 표상된 민족을 발견하고 동일시하는 경향성이 나타난다. 극장과 같은 집합적 공간의 공적 경험과 스크린에 대한 관객의 사적 경험의 접촉 지대(contact zone)에 위치된 조선인 배우들은 조선영화의 내셔널한 상징으로서 새로운 스타덤을 형성했다. 특히 무성영화의 활극 스타가 쇠퇴한 자리에 부상한 여배우들은 토키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제국 일본 내에서 조선의 문화적/민족적 정체성을 전시하는 존재로 재설정되었으며, 전시 체제에 들어서자 ‘내선(內鮮)’ 혹은 ‘일선만(日鮮滿)’의 유대를 체현하는 신체로서 동원되었다. 발성영화 제작은 조선영화계에 양날의 칼이었다. 발성영화 전환을 통해 조선영화는 자기완결적인 상품으로서 제국 일본의 영화권(film sphere) 안에서 트랜스내셔널하게 유통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국 시장에 대한 종속성이 강화되면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없는 마이너리티 시장으로서 그 존립을 위협받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전시 체제 재편과 맞물려 조선영화는 전쟁 동원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호명되는데, 여기에는 식민지/제국 체제의 언어 편제에서 비롯된 두 방향의 벡터(vector)가 작용했다. 하나는 조선 시장의 협소함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영화사나 만영(滿映)과의 합작을 통해 제국 내 영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장을 확대하며,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

목차

목차
차례 국문요약 = iii I. 서론 = 9 1. 연구 목적 = 1 2. 연구사 검토 = 3 3. 연구 방법 = 12 II. 토키 이행기 극장의 문화적 지형 변화 = 21 1. 식민지 극장과 다이글로시아 = 22 (1) 두 민족, 두 언어, 두 극장 (2) '동족(어) 공간'의 정치적 잠재성 2. 외국 발성영화의 도래와 '방문자막(邦文字幕)'의 출현 = 37 (1) 무성영화기 외국영화의 수용: 과잉 혹은 유연성의 조건들 (2) 초기 외국어 발성영화의 상영 방식들 (3) '방문자막(邦文字幕)'의 출현과 정착 3. 상영의 표준화와 극장의 문화 정치적 위상 변화 = 65 (1) '육성(肉聲)'에서 '발성(發聲)'으로 (2) '동족(어) 공간'의 쇠퇴와 상영의 문화적 지형 변화 III. '발성'하는 신체와 '조선영화'의 형성 = 85 1. 조선어 영화의 등장과 조선영화 만들기 = 86 (1) '음화(音畵)'로의 재출발 (2) 조선어 대사로 영화 만들기: 나운규의 시도와 좌절 (3) 문학과 영화, 그리고 조선영화의 '신세리틔' 2. 초기 조선어 영화의 사운드 실험 = 112 (1) 경성촬영소의 토키 토착화 시도 (2) '사운딩 코리안': 조선영화의 음악, 노래하는 조선 (3) 육체와 음성의 사운드 몽타주 3. '발성'하는 신체: 목소리와 신체, 그리고 스타덤 = 137 (1) 영화 연기의 제도화: '안면 근육'의 무도(舞蹈)에서 '에로큐-??'의 문제로 (2) '조선적 신체'와 목소리 IV. '소리'의 벡터: 제국의 관객을 상상하기 = 153 1. 중일전쟁 이후 제국적 영화권의 편성 = 153 (1) 식민지 조선의 양화(洋畵) 통제와 일본 흥행계의 조선 진출 (2) 조선영화의 일본 이출(移出)과 내선(內蘚) 합작 영화 2. '대동아공영권'과 일본어 영화(Japano-phone cinema)의 기획 = 181 (1) '대동아영화(권)'과 '동아 공통어'로서의 일본어 (2) '조선어 영화'의 기로 (3) '고쿠고[國語] 영화'와 흐려지는 민족적 신체 3. 조선어 공간의 재편 = 206 (1) 문화의 외부, 이동하는 극장 (2) '오랄리티(orality/aurality)'의 이중성 V. 결론 = 221 참고문헌 = 223 日文要約 = 237

소장정보 1

TKC03753_01

입수처
국회도서관
입수방법
기증
입수일자
2012-12-14
그룹정보
-
공개구분
방문열람
복사/대여
-
보관위치
영상도서관(상암)

연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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