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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관(부산)

관리번호 EKP000386

활동 기간
1942-00-00 ~ 1976-06-11
단체분류
국내단체
운영 여부
미상
국가
대한민국
DB 수정요청

소개

-극장명: 대화관(大和館) -개명극장명: 대화관(大和館: 야마도간) → 대화(大和)극장(1946년) → 부산진(釜山鎭)극장(1946년 11월) → 은영(銀映)극장(1949년 6월) → 동양(東洋)극장(1954년 9월) → 미성(美星)극장(1959년 4월) → 동서(東西)극장(1974년) -위치: 부산 초량, 재개봉관 동서극장(東西劇場)은 경부선 부산진(釜山鎭)역 맞은 편 동구 수정동 1-62번지(동구 중앙대로 399)에서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본인 사이조 사다도시(西條貞利)가 세운 대화관(大和館)으로 시작되었다. 대화관 시절에는 사쿠라바 상사(サクラバ商社)가 배급하는 도호(東宝) 영화사의 작품들이 주로 상영되었다. 광복 후 적산(敵産) 극장으로 관리되어 1946년 대화(大和)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 아래에서 일하던 한국인 종업원들이 임시로 경영하였다. 하지만 미군정청은 종업원들의 반발에도 외부의 문화예술인을 지배인으로 임명하였고, 새 지배인 양정식(梁正植)은 1946년 11월 극장명을 부산진(釜山鎭)극장으로 바꾸었다. 해방기 극장에서는 극단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고, 창고에 쌓여있던 한국 무성영화가 재상영되기도 했다. 이후 경영주가 바뀌면서 1949년 6월 은영(銀映)극장(대표: 최성안崔聖安), 1954년 9월 동양(東洋)극장(대표: 이명조李命祚)으로 다시 개명되었다. 동양극장은 1958년 6월 9일, 1층 건물을 2층 철근 콘크리트로 개축하여 좌석 458개, 입석 105개, 총 563개 객석의 극장으로 재개관하였다. 그리고 이를 김상규(金相珪)가 인수하여 1959년 4월 6일 미성(美星)극장으로, 1974년 동서(東西)극장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대화관(大和館)으로 시작된 후 대화(大和)극장(1946년) → 부산진(釜山鎭)극장(1946년 11월) → 은영(銀映)극장(1949년 6월) → 동양(東洋)극장(1954년 9월) → 미성(美星)극장(1959년 4월) → 동서(東西)극장(1974년)으로 부산 지역에서는 가장 많이 이름이 바뀐 극장이 되었다. 동서극장이 된 후 2년 동안 2편 동시 상영의 3번관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1976년 영화 산업의 쇠퇴와 함께 폐관되었다. 현재 극장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터에 프라임관광호텔이 들어섰다. "

연혁

내용 설립일자 종료일자
대화관(부산) 1942-00-00 1976-06-11

연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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