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1937년 7월 18일 명월관에서 최남주, 박기채, 이필우 등이 모여 피로회(披露會)를 열고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 이하 ‘조영)의 발족을 기념하였다. 조영은 최남주가 사장을 맡고 박기채와 이필우가 핵심 멤버가 되어 설립된 영화사로, 5만원 1회불 원칙에 따라 창립된 주식회사였다. 정식 창립 이전부터 영화사 시설 마련을 위해 이필우와 박기채는 1937년 3월부터 동경과 경도 등을 방문하여 관련 장비를 구입했다. 조영은 이러한 장비 구입 작업을 병행하면서 임시 사무소를 명륜정(明倫町) 4정목25번지(四丁目二十五番地)에 마련하였고, 1937년 가을에 장소를 물색하여 스튜디오를 건립한 후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출범 당시 조영의 자본금은 총 50만원이었는데, 그 중 1회 불입금으로 12만원 5천원을 충족한 상태였다. 당시 이 불입금을 납부하고 경영에 참여한 사람은 최남주를 위시하여 이재명, 오영석, 박기채 등이었다. 이러한 자본을 바탕으로 비록 소규모일지언정 토키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고, 2~3개의 토키 스튜디오의 건립을 계획할 수 있었다. (출처: 김남석(2012). 조선의 영화제작사 ‘조선영화주식회사’ 연구. 우리어문연구 44집. 475-502p) -1936년에 박기채는 안석영과 함께 호남지역의 대부호인 최남주가 설립한 조선영화주식회사의 발기인이 되었다. 자본금 50만원에 1회 불입금 5만원의 주식회사로 출범한 조선영화주식회사는 총 10만원을 들여 의정부에 변전실, 영사실, 현상실, 녹음실, 음악실 등을 구비한 1,000평 규모의 스튜디오를 조성하고 전속 영화인 30여 명을 두었다. (출처: 대망의 조선영화-주식회사 창립, 최남주씨를 중심으로 , 동아일보, 1937년 7월 21일 6면; 議政府스타듸오, 映畵의 平和스러운 마을 , 삼천리 제11권 제4호, 1939년 4월 1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전속 배우로 문예봉, 김인규, 서월영, 김일해, 한은진 등이 있었으며 제작진으로 1937년 조명기사 김성춘이 입사, 1940년 감독 안석영이 입사했다. 유일한 여자 전속배우는 문예봉과 한은진이었으나, 문예봉은 전속계약이 만료된 1939년 7월 이후 고려영화협회로 옮겨갔으며 한은진은 <무정> 출연 이후 연극무대로 돌아갔다. (출처: 이순진 (2009). 1930년대 영화기업의 등장과 조선의 영화 스타. 한국극예술연구) 조선영화주식회사의 마지막 작품은 김영화(金永華) 연출의 <우러르라 창공(仰げ大空)>으로 국방사상을 강조한 시국영화.
연혁
| 내용 | 설립일자 | 종료일자 |
|---|---|---|
| 조선영화주식회사 | 1935-07-18 | 1942-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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