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ㅇ 1986년 10월 18일 서울영화집단 활동을 끝내고 서울영화집단의 중심이었던 홍기선 감독이 서울영상집단 창립. ㅇ 서울영상집단은 민중영화에 대한 방향성을 강조한 영화운동 단체였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당시 농가부채 및 수입 농산물 문제,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국민 생활의 빈곤을 거론하며, 문제의 원인을 "외자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의 파생성과 독점자본과 결탁한 군부세력, 그 하수인 역할을 하는 정치 세력 등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민중적 집단"으로 지목했다. (중략) <파랑새 사건>의 영향으로 1년 정도의 짧은 활동을 마치고 노선 차이로 인한 문제로 재편된다. 도서『변방에서 중심으로』에 따르면 영화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와 내부 문제로 1987년 초 조직이 분리된다. 일부는 민족영화연구소를 설립했고, 남은 회원들은 당시 대표적인 문예운동단체인 '민중문화운동연합'의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1989년 민중문화운동연합을 탈퇴한 후 노동운동과의 연계를 모색하며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노동자뉴스제작단'을 결성했다. 그러다가 1989년말 노동자뉴스제작단의 활동에 대한 평가과정에서 창작관점에서 차이를 보여 1990년 홍형숙(다큐멘터리 감독), 남인영(부산 동서대 교수) 등이 중심이 돼 '서울영상집단'이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며 분리 독립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독립영화운동에 참여해 홍기선 감독 등과 함께 활동했고 현재 독립영화워크숍을 이끌고 있는 낭희섭은 "서울영상집단은 홍기선 감독과 이효인이 영화법 위반으로 구속된 '파랑새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영향이 컸다"면서 "이후 민중문화운동연합 안으로 들어갔다가 노동자뉴스제작단을 거쳐 다시 분리돼 나온 서울영상집단은 서울영화집단의 연장선이기 보다는 새로운 영화조직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참고: 오마이뉴스. 2020.02.05) 1982년 '서울영화집단' 결성, 1986년 '서울영상집단'으로 개칭, 1990년 '삶의 자리, 투쟁의 자리'를 시작으로 진보적 다큐멘터리 전문제작단체 표방
연혁
| 내용 | 설립일자 | 종료일자 |
|---|---|---|
| 서울영상집단 | 1986-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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