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무룡

Choi Moo-ryong · 崔戊龍

분야
배우, 감독
데뷔작품
탁류 (1954)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310

전체보기

수상내역 12

주요 경력

영화인협회 제 16,17,18,19,21,22대 부위원장
영화인협회 제23대 위원장
영화인협회 명예위원장(1986), 영화인협회 이사, 한국 영상자료원 제2대 이사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했다. 개성상고를 졸업한 최무룡은 1949년 중앙방송 전속 성우를 거쳐 1952년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중앙대 법대 재학 중 연극 <햄릿>의 주역을 맡아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경향신문b), 이만흥 감독의 <탁류>(1954)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오발탄>, <양산도>(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빨간 마후라>(1964),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970), <아름다운 팔도강산>, <30년만의 대결>(1971) 등 개성 있는 연기와 목소리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1960년대 주요 전성기를 구가한 대표배우 중 한명이다. 또한 스타 여배우였던 강효실, 김지미와의 결혼과 이혼 등의 화제로 세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배우이기도 했다(경향신문a). 한편 그는 1965년 <피어린 구월산>이라는 작품을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그 후 <나운규 일생>(1966), <서울은 만원이다>(1967), <흑점>(1969), <지하여자대학>(1970), <이 한몸 돌이 되어>(1983), <덫>(1987) 등 16편의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계 원로로서 각종 영화단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국영화인협회 부위원장 및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93~94년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장, 1995년 우리영상사업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88년 김종필 공화당 총재의 천거로 13대 총선 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었다. 1999년 11월 12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경향신문b). 영화배우 최민수가 그와 강효실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2년 10월 31일자 7면 경향신문b 1999년 11월 12일자 27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