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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숙

Moon Jung-suk · 文貞淑

분야
배우
데뷔작품
꿈에 본 내 고향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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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0

주요 경력

극단 아랑(阿娘), 신청년(新靑年), 예술극회(藝術劇會), 극협(劇藝術協會), 동라극회(銅羅劇會), 신협(新劇協議會) 등 단원

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1947년 보성여자고등학교(保聖女高)를 졸업했다(김기제). 언니 문정복(文貞福)이 단원으로 있던 극단 아랑(阿娘)에 들어가 무대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극단 신청년(新靑年), 예술극회(藝術劇會), 극협(劇藝術協會), 신협(新劇協議會) 등에서 연극을 하며 배우로서 경력을 쌓았다(매일경제, 김기제). 1952년 신상옥 감독의 데뷔작 <악야>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으며, 이후 같은 감독의 <젊은 그들>(1955)에 출연했다. 1956년에 출연한 유현목 감독의 <유전의 애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강천의 <생명>(1958), 양주남의 <종각>(1958) 등을 거쳐 1959년 무렵에는 한 해 1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는 비중 있는 배우로 성장했다.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를 시작으로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주연을 맡은 <마의 계단>, <검은 머리>(1964), <시장>(1965), <7인의 여포로>, <만추>(1966), <귀로>(1967) 등의 작품들은 그녀의 대표작이 되었다. 특히 <시장>에서 백치 여성 연기로 열연하여 호평을 받았고, 신성일과 함께 주연을 맡은 <만주>에서는 치밀한 연기력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 받았다(한국일보, 경향신문).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매년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으며, 1996년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출연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에서 ‘어머니’ 역할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청룡영화상에서 1964년 제2회(<돌아보지 마라>), 1966년 제4회(<시장>)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대종상영화제에서 1967년 제6회 여우주연상(<귀로>)과 1978년 제17회 여우조연상(<경찰관>)을 받는 등 비평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극단 활동을 하면서 만난 장일(張逸)과 1948년에 결혼했으나 1967년에 협의 이혼했다(여원, 선데이서울). 2000년 3월 향년 73세로 별세했다(한국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6년 12월 3일자 5면 매일경제 1969년 12월 16일자 6면 한국경제 2000년 3월 3일자 한국일보 1965년 12월 24일자 7면 문정숙·이만희 시들해진 ‘여보·당신’, 『선데이서울』 제2권 제38호(1969년 9월 발행) 은막과 가정 사이 ‘유전의 애수’, 『여원』1960년 5월호(1960년 5월 발행)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89-190쪽. 대종상영화제 역대수상작 http://www.daejongsang.com/awarded/awarded.asp?sub_num=1 청룡영화상 역대시상식 http://www.blueaward.co.kr/bbs/board.php?bo_table=awards_news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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