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538
수상내역 36
주요 경력
- 1979년
-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 1983년
- 성일씨네마트 설립 10여편 제작 및 감독
- 2000~2004년 제16대 국회의원
- 2001년
- 한나라당 총재특보
- 2002년
- 춘사 나운규 기념사업회 회장
- 2002년
-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 2008년 2월~
-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
- 2008년 4월
- 제46회 경상북도 도민체육대회 홍보대사
- 2009년 4월~
- 계명대학교 연극예술과 특임교수
- 2011년 4월
- 25일~11월 4일 <중앙일보>에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 연재
영화인 정보조사
1937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났다. 경북 고등학교 2년 재학 시절, 가세가 기울어 서울에 올라와 청계천 근처에서 호떡 장사를 하던 중, 고교 동창인 손시향이 가수로 성공한 것을 보고서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한국배우전문학원이었고, 여기서 김수용, 유현목, 김기영 등 감독들의 강의를 듣는다. 그리고 신필름의 배우 공모에 응시하여 합격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신동아). 신성일이라는 예명은 신필름 시절,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영어 뜻을 한자 이름에 담아 만들어진 것으로(인터뷰365),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의 막내아들 역할을 맡아 스크린에 데뷔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62년 한운사의 인기 연속 방송극을 영화화한 <아낌없이 주련다>에서 부터이다. 이 영화로 극동흥업과 인연을 맺은 이후, 공전의 히트작에 출연하게 되는데, 그 영화가 <맨발의 청춘>(1964)이다. 이 영화를 전후로 아카데미 극장과 극동흥업 사이의 파트너쉽이 형성되었으며, 그로 인해 한동안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청춘영화 붐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로서 활동한 약 50년간의 연기 기간 동안 출연한 500여 편의 출연작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만 꼽아보자면 <만추>(1966), <초우>(1966), <안개>(1967), <장군의 수엽>(1968), <별들의 고향>(1974), <태양닮은 소녀>(1974), <길소뜸>(1985), <위기의 여자>(1987) 등이 있다. 1970년 초반에는 배우 활동 외에도, 몇 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감독으로도 활동하는데, <연애교실>(1971), <어느 사랑의 이야기>(1971),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 <그건 너>(1974) 등 네 편의 청춘 영화를 감독한다. * 참고문헌 虛의 미학을 가진 배우 신성일, 『신동아』 531호 (2003년 12월 1일) 살아있는 무비스타의 전설-신성일, 인터뷰 365 (http://i365.mk.co.kr/news/3597)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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