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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Shin Young-kyun · 申榮均

분야
배우, 제작/기획
데뷔작품
검사와 여선생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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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9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회 대종상 영화제 1962 남우주연상 연산군(장한사모편)
제9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1962 남우주연상 상록수
제2회 대종상 영화제 1963 남우주연상 열녀문
제6회 부일영화상 1963 남우주연상 연산군(장한사모편)
제11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1964 남우주연상 빨간 마후라

주요 경력

1958년
해군중위 임관 및 대위로 전역(군의관)
1958년
동남치과 원장
1968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1973년
한주홀딩스코리아 설립 대표이사 (현 명예회장)
1979년
한국영화인협회이사장

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부친을 여의고, 서울로 이주하여 자랐다. 교회 아동극을 보며 연기에 꿈을 품게 되었고, 한성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청춘극장에 입단하여 1년간 연기활동을 하기도 한다. 극단에서 이동을 하던 중, 타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어 여러 단원들이 다친 것을 보고서 극단 활동을 접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한다. 치대 졸업 후에도 서울대 출신의 연극배우들인 박암, 이낙훈 등과 함께 연극을 하였고, 다시 1년 동안 의사고시를 준비하여 치과 의사로 개업하기도 한다(신동아). 그렇게 개업한 치과에는 연극계, 영화계 인사들이 많이 오갔고, 그러던 가운데 알게 된 조긍하 감독의 권유로 <과부>(1960)에 주인공인 머슴 역할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그렇게 데뷔하게 된 영화에서의 이미지들은 멜로드라마나 청춘 영화 속 로맨스의 주인공 보다는 한 가정의 가장(<미워도 다시 한번>(1968)), 큰 아들(<로맨스 그레이>(1963)), 한 나라의 임금(<연산군>(1961)), 이름난 장수(<천년호>(1969)), 실천하는 지식인(<상록수>(1961)) 등 커다란 책임감을 지닌 동시에,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하였다. 1978년 <화조> 이후, 영화배우로서는 오랜 휴식을 취하며, 명보극장을 경영하고, 제주도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개설하였으며, 15대, 1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을 돌보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한국영화계의 후진 양성을 위하여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을 기부하기도 했다. * 참고문헌 소박과 야심의 두 얼굴 신영균-"정치? 사업? 그래도 배우가 제일 좋았어요", 『신동아』 541호 (2004년 10월 1일)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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