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39
수상내역 29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회 대종상 영화제 | 1962 | 남우주연상 | 연산군(장한사모편) |
| 제9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62 | 남우주연상 | 상록수 |
| 제2회 대종상 영화제 | 1963 | 남우주연상 | 열녀문 |
| 제6회 부일영화상 | 1963 | 남우주연상 | 연산군(장한사모편) |
| 제11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64 | 남우주연상 | 빨간 마후라 |
|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4 | 인기상(남) | - |
| 제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5 | 인기상(남) | - |
| 제4회 대종상 영화제 | 1965 | 남우주연상 | 달기 |
| 제2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66 | 영화부문 연기상 | -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남우주연상 | 시장(市場)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인기상(남) | - |
| 제10회 부일영화상 | 1967 | 남우주연상 | 물레방아 |
| 제5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7 | 인기남우상 | - |
| 제5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69 | 영화부문 연기상 | 대원군 |
| 제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9 | 남우주연상 | 대원군 |
| 제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9 | 인기남우상 | - |
| 제6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0 |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 - |
| 제7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0 | 인기남우상 | - |
| 제8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1 | 인기남우상 | - |
| 제8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2 |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 - |
| 제10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3 | 남우주연상 | 삼일천하 |
| 제15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7 | 춘사대상 | - |
|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 2007 | 공로상 | - |
| 제16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8 | 춘사대상 | - |
|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2008 | 공로상 | - |
|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2010 | 특별공로상 | - |
|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 2010 | 특별상 | - |
| 제1회 신필름예술영화제 | 2017 | 공로상 | - |
| 제56회 대종상 영화제 | 2020 | 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58년
- 해군중위 임관 및 대위로 전역(군의관)
- 1958년
- 동남치과 원장
- 1968년
-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 1973년
- 한주홀딩스코리아 설립 대표이사 (현 명예회장)
- 1979년
- 한국영화인협회이사장
- 1981년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3차 연임)
- 1981년
- 재단법인 신영예술문화재단 이사장
- 1983년
- 사단법인 문화예술인의료보험조합 이사장
- 1983년
- 독립기념관 설립추진위원회 이사
- 1988년
-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 1991년
- 월드컵 유치위원회 유치위원
- 1992년
- 서울대총동창회 부회장 및 한성고 총동문회 회장
- 1992년
- 서울방송 이사 , SBS프로덕션 회장
- 2002년
- 제주국제자유도시방송(JIBS) 명예회장(현)
- 1996년
- 제15대 국회의원
- 2000년
- 제16대 국회의원
- 2000년
- 한일의원연맹 상임고문(현)
- 2009년
- 전국 지역민영방송협회 회장단협의체 회장(현)
- 2008년
- 한나라당 상임고문(현)
- 2009년
- 대한민국 국민원로회의 위원(현)
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부친을 여의고, 서울로 이주하여 자랐다. 교회 아동극을 보며 연기에 꿈을 품게 되었고, 한성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청춘극장에 입단하여 1년간 연기활동을 하기도 한다. 극단에서 이동을 하던 중, 타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어 여러 단원들이 다친 것을 보고서 극단 활동을 접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한다. 치대 졸업 후에도 서울대 출신의 연극배우들인 박암, 이낙훈 등과 함께 연극을 하였고, 다시 1년 동안 의사고시를 준비하여 치과 의사로 개업하기도 한다(신동아). 그렇게 개업한 치과에는 연극계, 영화계 인사들이 많이 오갔고, 그러던 가운데 알게 된 조긍하 감독의 권유로 <과부>(1960)에 주인공인 머슴 역할로 출연하며 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그렇게 데뷔하게 된 영화에서의 이미지들은 멜로드라마나 청춘 영화 속 로맨스의 주인공 보다는 한 가정의 가장(<미워도 다시 한번>(1968)), 큰 아들(<로맨스 그레이>(1963)), 한 나라의 임금(<연산군>(1961)), 이름난 장수(<천년호>(1969)), 실천하는 지식인(<상록수>(1961)) 등 커다란 책임감을 지닌 동시에,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하였다. 1978년 <화조> 이후, 영화배우로서는 오랜 휴식을 취하며, 명보극장을 경영하고, 제주도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개설하였으며, 15대, 1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의정을 돌보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한국영화계의 후진 양성을 위하여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을 기부하기도 했다. * 참고문헌 소박과 야심의 두 얼굴 신영균-"정치? 사업? 그래도 배우가 제일 좋았어요", 『신동아』 541호 (2004년 10월 1일)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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