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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Kim Jin-kyu · 金振奎

분야
배우,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꿈에 본 내 고향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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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3회 부일영화상 1960 남우주연상 비극은 없다
제4회 부일영화상 1961 남우주연상 박서방
제5회 부일영화상 1962 남우주연상 성춘향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4 남우주연상 잉여인간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4 인기상(남) -

주요 경력

1968년
예총 부회장 당선, 역임
영화 배우협회 회장 역임
1982년
영화인협회 회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일본 오이타(大分)현 농업전문학교를 마쳤다. 귀국 후 20살 무렵 삼촌의 소개로 동양극장 무대에 서면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다. 해방 뒤 장동휘와 함께 극단 장미(薔薇)를 만들어 순회공연 중, 이강천 감독에게 발탁되어 <피아골>(1954)로 영화계에 데뷔했다(한겨레). 데뷔 당시부터 20여 년간 그의 한자 이름은 김진규(金振奎)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성명의 한자는 김진규(金振圭)이다(경향신문a). 이후 그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발돋움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등 개성 있는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고, 강대진의 <박서방>(1960),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에서 말쑥한 청년 역으로 주목을 모으며 인기 배우가 되었다. 그를 스타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작품은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성춘향>(1961)이다. 그는 ‘몽룡’ 역으로 특유의 깔끔하고 건강한 청년 이미지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정감 있는 연기력과 대중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부일영화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당대 수많은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및 인기상을 수상했다. 1967년 김진규는 김용익의 영문소설을 영화화 한 <종자돈>으로 첫 메가폰을 잡았다(동아일보a). 신영균과 김보애가 주연을 맡았고,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문예영화였다. 이후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야심차게 <성웅 이순신>(1971)의 제작에 뛰어들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경향신문b). 이후 제작에는 손을 떼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배우 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예총 부회장 및 영화인 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지병인 골수암으로 1998년 향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67년 6월 6일자 5면 동아일보b 1998년 6월 19일자 14면 경향신문a 1976년 12월 16일자 8면 경향신문b 1977년 12월 27일자 5면 한겨레신문 1998년 6월 19일자 13면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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