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44
감독 (1개)
수상내역 2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3회 부일영화상 | 1960 | 남우주연상 | 비극은 없다 |
| 제4회 부일영화상 | 1961 | 남우주연상 | 박서방 |
| 제5회 부일영화상 | 1962 | 남우주연상 | 성춘향 |
|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4 | 남우주연상 | 잉여인간 |
|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4 | 인기상(남) | - |
| 제1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65 | 영화부문 대상 | 벙어리 삼룡 |
| 제12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65 | 남우주연상 | 벙어리 삼룡 |
| 제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5 | 남우주연상 | 잉여인간 |
| 제8회 부일영화상 | 1965 | 남우주연상 | 벙어리 삼룡 |
| 제1회 백마상영화제 (중도일보영화제) | 1966 | 남우주연상 | -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인기상(남) | - |
| 제5회 대종상 영화제 | 1966 | 남우주연상 | 태양은 다시 뜬다 |
| 제9회 부일영화상 | 1966 | 인기상 | - |
| 제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67 | 영화부문 연기상 | - |
| 제5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7 | 인기남우상 | - |
| 제12회 부일영화상 | 1969 | 남우주연상 | 카인의 후예 |
| 제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9 | 인기남우상 | - |
| 제11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5 | 영화부문 연기상 | 광화사 |
| 제14회 대종상 영화제 | 1975 | 남우조연상 | 삼포가는 길 |
| 제16회 대종상 영화제 | 1977 | 남우주연상 | 난중일기 |
| 제25회 대종상 영화제 | 1986 | 86 영화인상 | - |
주요 경력
- 1968년
- 예총 부회장 당선, 역임
- 영화 배우협회 회장 역임
- 1982년
- 영화인협회 회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일본 오이타(大分)현 농업전문학교를 마쳤다. 귀국 후 20살 무렵 삼촌의 소개로 동양극장 무대에 서면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다. 해방 뒤 장동휘와 함께 극단 장미(薔薇)를 만들어 순회공연 중, 이강천 감독에게 발탁되어 <피아골>(1954)로 영화계에 데뷔했다(한겨레). 데뷔 당시부터 20여 년간 그의 한자 이름은 김진규(金振奎)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성명의 한자는 김진규(金振圭)이다(경향신문a). 이후 그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발돋움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등 개성 있는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고, 강대진의 <박서방>(1960),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에서 말쑥한 청년 역으로 주목을 모으며 인기 배우가 되었다. 그를 스타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작품은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성춘향>(1961)이다. 그는 ‘몽룡’ 역으로 특유의 깔끔하고 건강한 청년 이미지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정감 있는 연기력과 대중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부일영화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당대 수많은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및 인기상을 수상했다. 1967년 김진규는 김용익의 영문소설을 영화화 한 <종자돈>으로 첫 메가폰을 잡았다(동아일보a). 신영균과 김보애가 주연을 맡았고,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문예영화였다. 이후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야심차게 <성웅 이순신>(1971)의 제작에 뛰어들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경향신문b). 이후 제작에는 손을 떼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배우 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예총 부회장 및 영화인 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지병인 골수암으로 1998년 향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67년 6월 6일자 5면 동아일보b 1998년 6월 19일자 14면 경향신문a 1976년 12월 16일자 8면 경향신문b 1977년 12월 27일자 5면 한겨레신문 1998년 6월 19일자 13면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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