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566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2회 대종상 영화제 | 1973 | 남우조연상 | 열궁녀 |
|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 1980 | 남우조연상 | 땅울림 |
주요 경력
- 1971년
-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위 위원장
- 1972년 7월 4일
- 영화배우협회 회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 대구에 내려갔다가 1951년부터 극단 신협(新劇協議會)에서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1952년 민경식 감독의 <태양의 거리>에서 불량아를 선도하는 훈육 주임으로 연기하면서 영화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다음 작품인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1955)에서는 ‘무령’역으로 인상적인 악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이후에도 <황혼열차>, <여성전선>(1957),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 <고려장>(1963) 등 김기영 감독 작품에 단골 출연했다. 한편 1958년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에서 검사, 1965년 유현목 감독의 <춘몽>에서는 치과의사 역을 맡는 등 그는 지적인 전문직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 박암의 단연 화제작은 바로 한형모 감독의 1956년작 <자유부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어린 여제자에게 이끌리는 대학교수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1965년 <불나비>(조해원)에서는 김지미를 열렬하게 흠모하며 쫓는 남자 역할을 맡아 색다른 면모를 선보이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80년대까지 4백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묵직한 조역으로 빛을 발했다. <열궁녀>(1973)로 제12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땅울림>(1980)으로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1년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위 위원장(경향신문a) 및 1972년 영화배우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경향신문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71년 3월 31일자 8면 경향신문b 1989년 3월 23일자 4면 동아일보 1989년 3월 23일자 15면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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