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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트 김 대표 이미지

트위스트 김

Twist Kim

분야
배우
데뷔작품
원한의 일월도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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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8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2000 춘사영화제 공로상 -

주요 경력

패케이지 쇼단결성(1970-80)
1989년,1990년 철인 삼종경기 연령별 우승

영화인 정보조사

영화배우를 꿈꾸었던 트위스트 김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촬영장을 찾았다가 신상옥 감독에게 픽업되었다. 트위스트 김이란 이름은 대천해수욕장에서 <아름다운 수의>(1962)를 촬영할 때 영화에 출연한 그가 트위스트 춤을 추었는데 이것을 본 신상옥 감독이 예명으로 지어준 것이다. 경남극장에서 대한뉴스 시간에 나온 트위스트 춤을 보고 매료되어 연습을 해둔 것이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트위스트 춤으로 <아름다운 수의>에서 그의 극중 이름인 ‘영식’이 ‘트위스트 김’으로 바뀌었고 원안에 없던 캬바레 춤 장면까지 삽입되었다(한국영상자료원).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맨발의 청춘>(1964)을 통해서였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영화에서 그가 선보인 트위스트 춤이 유행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전국 춤꾼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실력 있는 춤꾼이었다(중앙일보). 트위스트 김은 이후 청춘영화와 코미디영화에서 개성파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소령 강재구>(1966)에서는 주연인 신성일보다 역할 비중이 더 많았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높았다. 그는 <연애도적(戀愛盜賊>(이노우에 우메츠구(井上梅次),1971)이란 신필름과 쇼브라더스의 합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한국영상자료원). 1960년대에 전성기를 보내던 그는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가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자 영화계를 떠나 밤무대에 서기도 했다(맥스뉴스). 1980년대 이후에는 TV드라마에서 악역으로 자주 출연했다. 트위스트 김은 외상성 뇌출혈로 4년 넘게 투병생활을 하다가 2010년 11월 30일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뉴스엔). 2005년 일일 드라마 「맨발의 청춘」이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었다(맥스뉴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6년 4월 11일자 5면. 매일경제 1970년 3월 4일자 4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41) 트위스트 김”, 중앙일보, 2011/06/20.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661287&cloc=olink|article|default) “故트위스트김 발인 ‘운구 들 사람도 없었다’ ”, 뉴스엔, 2010/12/02.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2021443451003) “트위스트 김을 아시나요?”, 맥스뉴스, 2010/12/02. (http://www.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0924396)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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