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449
수상내역 14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2회 산업경제신문사 한국영화상(산경신문영화상) | 1963 | 주연 남우상 | 다이알 112를 돌려라 |
| 제2회 대종상 영화제 | 1963 | 남우조연상 |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
| 제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5 | 남우조연상 | 용사는 살아 있다 |
| 제4회 대종상 영화제 | 1965 | 남우조연상 |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 제13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66 | 남우주연상 |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 제6회 대종상 영화제 | 1967 | 남우주연상 | 고발 |
| 제11회 부일영화상 | 1968 | 남우주연상 | 메밀꽃 필 무렵 |
| 제7회 대종상 영화제 | 1968 | 남우조연상 | 카인의 후예 |
| 제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9 | 남우조연상 | 카인의 후예 |
| 제7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0 | 남우주연상 | 돌아온 팔도사나이 |
| 제17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71 | 남우조연상 | 전쟁과 인간 |
| 제9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2 | 남우주연상 | 소장수 |
| 제9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2 | 남자인기상 | - |
| 제10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3 | 남자인기상 | - |
주요 경력
- (저술내용)1995년 자서전『뻥가오리 백작』
영화인 정보조사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배우 중 한명이다. 1930년 전남 순천시에서 출생했다.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순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영화배우로 데뷔한 뒤, 김묵 감독의 <현상붙은 사나이>(1961), 이만희의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 이강원의 <도망자>(1965), 신경균의 <0번 상해돌파>(1967), 정창화의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1968) 등에서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마스크와 액션 연기로 독보적인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남대문 출신 용팔이>, <역전출신 용팔이>(1970), <신입사원 용팔이>, <위기일발 용팔이>(1971), <방범대원 용팔이>(1976), <돌아온 용팔이>(1983) 등 일련의 “용팔이” 시리즈로 개성 있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용팔이’로 분한 박노식의 연기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독특한 표정연기, 의리의 주먹”이라는 삼박자로 구성된 것이기도 했다(동아일보). 액션 뿐만 아니라 사극, 멜로,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대중적인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며 대종상과 청룡상의 남우주연상 및 인기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1971년 <인간 사표를 써라>로 감독 데뷔하였으며, <쟉크를 채워라>(1972), <집행유예>(1973),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 <방범대원 용팔이>(1976), <돌아온 용팔이>(1983) 등 열네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연출작은 활극적 요소롤 십분 발휘한 것이었고, 배우로서 자신의 대표작인 “용팔이” 시리즈를 직접 연출하기도 하는 등 감독으로서 강한 의욕과 개성을 나타냈다. 1980년대에 이민을 갔던 그는 귀국한 이후 배우로 활동하는 아들 박준규와 영화사를 준비하면서 영화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경향신문a). 1995년 지병인 당뇨병으로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경향신문b). 자신의 연기 인생을 회고한『뻥가오리 백작』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경향신문c).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91년 9월 28일자 19면 경향신문b 1995년 4월 4일자 23면 경향신문c 1995년 5월 24일자 12면 동아일보 1995년 4월 4일자 29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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