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앵란

Um Aing-ran · 嚴鶯蘭

분야
배우, 제작/기획
데뷔작품
천추의 한 (1956)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215

전체보기

수상내역 6

주요 경력

2001년
한국복지재단 미아찾기 홍보대사
2004년~
닥스클럽 대표 컨설턴트
2009년 7월
영양군 홍보대사
2010년 6월
김치 홍보대사
(저술내용)1961년 사색의 구름다리 (시집)

영화인 정보조사

1956년 <단종애사>에서 어린 왕비 역을 맡아 영화계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 때가 숙명여대 가정학과 1학년 재학 당시로 덕분에 학사 여배우 1호라는 칭호를 얻었다. 활동 초기, 당시 중견 배우였던 어머니 노재신이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연예계 진출과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그러한 활동 덕에 당시 영화계에서 감독 부문에서는 유현목과 함께, 배우 부문에서의 새로운 호프로 불리기도 한다(한국일보).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1963년 <청춘교실>의 커다란 성공이 그 발판이 되며, 특히 신성일과의 공연은 이후 배우, 개인의 삶 모두에 있어 커다란 이정표가 된다. 1963년 일본 소설인 <저놈과 나>를 영화화한 <청춘교실>(서울신문)의 커다란 성공은 이후 몇 년간의 청춘 영화의 붐과 청춘 스타로서의 엄앵란, 신성일 콤비의 인기를 예고했으며, 그 인기는 이듬 해 무려 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맨발의 청춘>(1964)에서 폭발한다. 엄앵란, 신성일 커플은 1963년부터 2년 남짓하는 기간 동안 무려 30여 편의 청춘 영화에서 공연하였고, 이 시기 제작된 청춘 영화는 50여 편에 이른다(신아일보). 청춘 영화와 청춘 스타에 대한 인기의 절정기인 1964년 말, 엄앵란, 신성일 콤비는 실제 결혼하기에 이르며, 이후 한국영화의 중심은 청춘 영화에서 액션 영화로 넘어가게 된다(신아일보). 1968년작 <아네모네 마담> 이후에도 몇 편의 영화 출연작이 있기는 하나, 이 영화는 청춘 스타 이미지를 굳히게 해 준 <청춘교실>을 그 개관작으로 상영했던 아카데미 극장의 폐관작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라 할 것이다. 이후, 남편 신성일의 국회의원 낙선 이후, 대구에서 비빔밥 식당을 하는 등 사업에 몰두했고, 2004년 이후 부터는 결혼정보회사의 대표 컨설턴트라는 공식 직함을 가지고 있다. 연예계 활동은 1990년대 초중반 이후, 공중파 TV에서의 패널, 사회자와 라디오 DJ 등으로 복귀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참고문헌 한국일보 1958년 1월 1일 11면 서울신문 1963년 12월 7일, 5면 신아일보 1965년 10월 12일, 5면 [작성: 황미요조]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