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혜영

Lee Hye-young · 李慧英

분야
배우
데뷔작품
김마리라는 부인 (1983)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41

전체보기

수상내역 8

주요 경력

1981년
'현대극단' 입단,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

영화인 정보조사

이혜영 李慧英 -배우. 1962년 11월 25일 서울 출생, 성정여고 졸업. 이혜영의 어린 시절은 준비된 배우의 삶이었다. 이만희 감독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꾸며 자라났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영화배우를 희망한다는 그의 말에 이만희 감독은 괴로워하며 울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뜬 후 어머니는 ‘항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라’고 가르치며 배우로서의 자세, 자질을 키우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이혜영은 “아빠로부터는 인생의 멋을 엄마로부턴 배우로서의 프로의식을 배웠다”고 술회했다.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여념이 없을 때 그는 댄스, 노래를 익히고 거울 앞에서 얼굴 표정, 걸음걸이를 연습하며 자신을 연출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여고 2학년 때에 연기 공모에 합격하였다. 먼저 연극으로 진출하여 춤과 노래,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고 <사운드 오브 뮤직>(현대극단) 비롯해 <슈퍼스타> <에비타> 등의 뮤지컬에 등장하면서 다재다능한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엄마 결혼식>(82, 김원두)에 대학생 역으로 잠깐 출연한 뒤 정식 영화입문은 <김마리라는 부인>(83, 정인엽)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21세의 신인여배우 이혜영은 “저를 개발시켜 주세요. 아무리 지나치다 할 주문이라도 괜찮아요. 저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키스 장면이 되도록 가르쳐주세요”라고 감독에게 부탁할 만큼 당돌하고 패기만만하였다. 소위 ‘에로 영화’가 풍미하던 80년대 영화계에서 육체의 아름다움과 도발적인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운 이혜영이 ‘에로 배우’로 희생도지 않았던 것은 당시 영화계의 풍토나 선정적인 저널리즘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그가 자의식과 배우로서의 ‘프로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땡볕>(85, 하명중)에서의 억척스런 아낙네, <겨울나그네>(86, 곽지균)의 ‘양공주’, <성공시대>(88, 장선우)의 성소비, <티켓>(86, 임권택)의 다방 레지, <남부군>(90, 정지영)의 여자 빨치산 등 그가 맡았던 역할은 강인하고 적극적인 여성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때로 지적인 이미지를 수반하기도 하였다. 하층민의 질긴 생명력과 ‘몸을 파는’ 직업에 종사하며 천대받아도 당당한 태도,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 등은 이혜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혜영은 사실 성적으로 착취당하면서 동시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여성 캐릭터가 주종을 이루던 80년대 한국영화에서 매우 드문 존재였으며 독특한 카리스마로 최고의 주연급 조연배우로 자리잡았다. 영화뿐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에도 꾸준히 출연해온 이혜영은 무대를 장학하고 스크린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배우이다. <성공시대> <사방지>(88, 송경식)에서 농염한 모습과 <화엄경>(93, 장선우)의 신비로운 모습은 그의 카리스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통일되고 그의 매끄럽고 강한 음성과 뛰어난 가창력 볼륨있는 몸매와 자신있는 몸짓은 독특한 향기를 발산한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배우이자 여성인 이혜영의 다짐은 계속 지켜지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더 젊어지는 여자, 전 꼭 그런 배우가 되겠어요.”(김수미) 출연 -82 엄마 결혼식. -83 김마리라는 부인. -84 무릎과 무릎사이. -85 땡볕, 여왕벌. -86 겨울나그네, 뛰는 자 나는 자, 전쟁과 명예, 티켓. -87 거리의 악사, 두 여자의 집,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 안녕하세요 하나님. -88 사방지, 성공시대, 위험한 향기, 제이의 성. -90 겨울꿈은 날지 않는다, 남부군, 코리안 커넥션. -91 개벽, 피와 불. -92 명자 아끼꼬 쏘냐. -93 화엄경. -94 아주 특별한 변신. -95 헤어드레서.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