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94
수상내역 7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6회 대종상 영화제 | 1967 | 우수반공영화상 | 돌무지 |
|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 2004 | 한국-홍콩합작영화 공로상(에르메스) | - |
| 제14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6 | 한류문화대상 | - |
| 제15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7 | 아름다운 영화인상 | - |
|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2011 | 공로영화인상 | - |
| 제11회 뉴욕아시아영화제 | 2012 | 평생공로상 | - |
| 제52회 대종상 영화제 | 2015 | 한국영화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46년-49년 최인규 감독의 문하로 영화계에 입문, 조감독
- 1950년
- 김성민 시나리오 <유혹의 거리>라는 데뷔작을 준비, 촬영과 편집을 마친 뒤 녹음을 준비하던 중 6·25 전쟁 발발, 화재로 원판이 소실됨.
- 1951년-52년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에 입대, 강원도 정선· 창녕 지역의 9사단으로 배치되어 활동하던 중 구사일생으로 탈출, 다시 대구에서 원대복귀를 했으나 부모님의 사고사로 인해 제대
- 1953년
- 실질적인 데뷔작이 된 <최후의 유혹>을 촬영, 부산 부민관 개봉, 흥행실패.
- 1956년-59년 <장화홍련전>을 시작으로 <풍운의 궁전>, <후라이보이 박사소동>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액션영화 연출을 위한 기틀을 다짐 <망향>을 비롯한 한홍합작 영화 연출을 시작
- 1960-67년 <햇빛 쏟아지는 벌판>부터 본격적인 액션영화 연출을 시작, <지평선> 이후 만주를 무대로 하는 대륙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그 외 청춘영화를
- 비롯하여 특히 액션이 가미된 다양한 영화들을 연출
- 1967년-72년 <순간은 영원히>를 본 홍콩 쇼 브라더스사의 란란쇼 사장으로부터 스카우트, 홍콩에서 <천면마녀>, <여협매인두>, <아랑곡> 등 무협영화 성공
- 1972년
-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연출, 할리우드 박스 오피스에서 1위
- 1973년-77년 골든 하베스트로 이적한 뒤 <흑야괴객>, <황비홍소림권>등을 연출
- 1978년
- 한국으로 돌아와 화풍흥업주식회사를 설립. 1986년까지 29편 제작
- 1981년
-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부회장
- 1982년
-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 이사
- 1983년
-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이사
- 1996년
- 미국으로 이주
- 2003년
-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 『한국 액션영화의 전설, 정창화!』개최
- 2004년
- 홍콩필름아카이브에서 회고전 개최, 파리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발에서 회고전 개최
- 2005년
-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 <죽음의 다섯 손가락> 초청됨
- 2007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 심사위원장 역임
- 2008년
-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어 1945년 서울음악전문학원에 들어갔으나, 최인규 감독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에 입대하여 활동했다고 하며, 1953년 <최후의 유혹>으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장화홍련전>(1956)이 흥행에 성공했고,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부터는 액션영화 감독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노다지>, <지평선>(1961), <수색대>(1964),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1965) 등에서 독특한 액션 연출 스타일을 만들어갔고, 한?홍합작 영화 <순간은 영원히>(1966)를 본 홍콩 쇼브라더스사가 스카우트를 제의하게 된다. 홍콩에서 그는 <천면마녀>(1969), <아랑곡의 혈투>(1970),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 등 액션, 무협영화를 만들었으며, 그중 특히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미국 개봉 첫 주 흥행 1위 기록을 세우며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쇼브라더스에서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한 후에도 <흑야괴객>(1973) 등 네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고 한다. 1978년 귀국한 후에는 화풍흥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1986년까지 29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 이사,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1996년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편, 『2008년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정창화』, 한국영상자료원, 2008, 13-25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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