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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배

Park Seung-bae · 朴承培

분야
촬영
데뷔작품
해바라기 가족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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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7

주요 경력

1967-1999년 현재 100여편의 촬영감독
1973-1975년 영화진흥공사 기술부 참사
1978년~1980년
현대 자동차 (주) 홍보실
1991-1999년 선우 광고(주)기술이사
1986년
제 10회 아시안 게임 공식 기록 영화촬영

영화인 정보조사

전쟁이 끝나고, 스물쯤 될 무렵 고모부가 일하던 삼성영화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때 한형모 감독을 만나, 촬영, 조명, 편집 등 영화제작에 있어 다양한 분야에 경험을 쌓는다(경향신문, 씨네21). 그리고 바로 그해 한양대학교에 영화과가 생기자, 거기 입학해서 이론을 공부한다. 1965년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하는 한편, 현장에서 줄잡아 60편의 영화에서 조수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1967년 한형모 프로덕션에서 정진우 감독의 <폭로>라는 작품으로 촬영감독 데뷔한다. 이후 전우열 감독과 10여 편의 영화에서 작업하고, 임권택, 하길종, 김수용 감독등과도 함께 작업 한다. 그러던 1973년 말, 일본으로 파견하여 기술연수를 시켜준다는 제안에 영화진흥공사에 입사하지만, 예산 문제로 파견 계획은 중단된다(매일경제). 그렇게 입사한 영화진흥공사에서 주로 하게 된 촬영은 국책으로 지원되는 반공영화와 계몽영화들이었으며, <증언>(1973), <전쟁의 얼굴>(1973),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태백산맥>(1975) 등이 영화진흥공사 시절 촬영했던 영화들이다. 1976년 영화진흥공사를 그만두고, 1977년 이원세 감독과 <엄마없는 하늘 아래>, <엄마없는 하늘 아래(속)> 등을 함께 작업하고, 1978년에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기업 홍보 영화 작업을 한다. 이어 1980년대 후반부터는 광고사에 입사하여 카메라 테크닉과 특수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시험한다. 1980년대 그렇게 영화계를 잠시 떠나있던 중에도 이장호 감독과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같은 문제작들을 촬영한다. 1990년대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걸어서 하늘까지>(1992), <증발>(1994), <축제>(1996), <넘버 3>(1997) 등의 작품을 촬영하고, 2003년에는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하여 <써클>이라는 작품을 내놓는다. * 참고문헌 매일경제 1974년 2월 20일 8면 경향신문 2003년 3월 14일 "카메라는 늙지 않는다", 『씨네21』, 286호 (2001년 2월 7일) [작성: 전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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