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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27년
-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 오노다시(小野田市)에서 혼다 히사오(本田久男)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한국인임을 알지 못한 채 성장
- 1944년
- 철도국에 입사하여 기관원으로 근무
- 1945년
- 해방 이후 한국인임을 알게 된 뒤 부산 영도에 정착
- 대동공업사 부산지사에 현장 측량기사 조수로 입사
- 1949~50년 부산 태양사진관과 라라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근무
- 1951~52년 부산 남포동에서 대양사진관 운영
- 1953년
- 종로4가 은파사진관과 국회에서 사진기사로 근무
- 1954~55년 서울 을지로에서 백양사진관 운영
- 1955년
- 홍성기 감독의 <애인> 촬영부 first로 영화계 입문 후 촬영 및 편집 분야에서 활동
- 1958년
- <모녀>에서 촬영감독 데뷔
- 1959년
- <백련부인>으로 감독 데뷔 이후 66여 편 연출
- 1972~73년 연예인송출회사인 AJK 상무
- 1999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 2000~04년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이사
- 2001~2004년 부천문화재단 이사
영화인 정보조사
1927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인줄 알고 살아오다, 해방되던 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함께 귀국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일본에서 배웠던 토목기술을 이용해 측량을 하거나, 공사현장 등에서 일했으며, 전쟁이 발발하던 20대 초반 부산에서 사진관을 연다(한국영화를 말한다). 이때 부산에 모여든 영화인들과 친분을 쌓고, 휴전 이후에는 서울로 올라가 국회 사진부에서 일하다가 사진관을 낸다. 그러던 중 홍성기 감독의 <애인>(1956)의 촬영부를 맡았던 이승모의 제안으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여기서 촬영과 편집일을 배우고 1958년 <모녀>의 촬영을 맡고, 1959년 <백련부인>으로 감독 데뷔한다. 고고학자와 발레리나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에서 카메라를 핸드헬드로 촬영하거나, 쓰러지는 인물과 함께 카메라를 쓰러뜨리는 등 다양한 카메라 워킹을 실험하나 흥행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후 <검은 장갑의 여인>(1962), <억세게 재수좋은 사나이>(1962), <민들레꽃도 봄이면 핀다>(1963) 등 미스테리, 코미디, 멜로드라마, 공포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출한다. 1965년의 <청춘사업>으로 12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 감독이 되었고, 그해 연출한 <주책바가지>를 통해 서민의 삶을 바탕으로 그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무엇보다 꿈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최초의 작가정신을 자각하며, 본격적으로 코미디 장르에 발을 들여놓는다(씨네21). 1968년 <남자식모>는 2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남자미용사>(1968), <남자와 기생>(1969) 등 남자 시리즈를 유행시킨다. 이후 <팔푼이 며느리>(1968), <팔푼이 사위>(1968), <팔푼이 부부>(1969) 등 팔푼이 시리즈, <팔도 노랭이>(1970), <팔도 며느리>(1970), <팔도 주방장>(1987) 등의 팔도 시리즈를 연출한다.1960년대 양훈, 구봉서 등을 거쳐, 1970년대 중반 무렵 배삼룡을 주연으로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 男はつらいよ> 시리즈와 같은 연작을 구상하기도 하여, <나의 인생고백> 연작을 연출하기도 하나 두 편으로 그치게 된다(씨네21). 1999년부터는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 참고문헌 심우섭, “한국영화회고록-심우섭편”, 『씨네21』, 291~304호(2001년 3월 16일~2001년 5월 30일) 한국영화연구소편,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3』, 한국영상자료원, 2007 [정리: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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