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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 대표 이미지

손인호

Sohn In-ho · 孫仁鎬

분야
동시녹음
데뷔작품
모녀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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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7

주요 경력

어린 시절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긴 뒤 중국 장춘으로 이주
1944년
장춘실무고등학교 졸업
1946년
평양에서 열린 관서콩쿠르대회에서 1등 수상 후 청운의 꿈을 안고 월남
KPK 악단에서 가수 생활
1953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공보처 영화과 녹음실 근무

영화인 정보조사

1927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났다. 창성보통학교 6학년 시절, 수풍댐으로 마을이 수몰되게 되자, 가족 모두 만주 장춘으로 이주해 생활하다, 광복 후 신의주로 돌아온다. 평양에서 열렸던 ‘관서 콩쿠르대회’에서 ‘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하는데, 이 때 심사위원 중 한명이 소질을 살리려면 이남에 가라는 권유를 받고서 형과 함께 서울에 내려온다. 작곡가 김해송이 이끌던 KPK 악단에 가수로 뽑혀 활동하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군예대(軍藝隊)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제대 후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처에서 일하며 ‘대한뉴스’ 녹음과 영화 녹음을 시작한다. 이즈음 영화 녹음일을 하던 매부 이경순과 함께 ‘한양녹음실’을 세운다. 이경순과 함께 영화 녹음을 위해 녹음기를 들고서 방방곡곡을 누비며 한국영화의 사운드 라이브러리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고, 천둥 소리, 빗소리, 총소리 등 음향 효과를 스튜디오에서 개발하는 등 한국 영화 음향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한양녹음실은 1961년대 개장하여 1990년대까지 대략 3500편의 한국 영화 녹음을 작업하였고, 그 가운데 2000편 가량이 손인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는 또한 유명 가수이기도 한데, 녹음 작업 틈틈이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서 한 달에 몇 곡씩의 의무 녹음 곡수를 채우며 ‘비 내리는 호남선’, ‘울어라 기타줄’, ‘해운대 엘레지’, ‘하룻밤 풋사랑’ 등 1950~60년대 히트곡들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방송은커녕 무대에도 나선 적이 없어 아내조차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이 가수인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서울신문 a,b) * 참고문헌 서울신문a 2006년 4월 27일 서울신문b 2006년 5월 4일 [작성: 황미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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