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25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3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89 | 특별상(감독상) | 제2의 성 |
주요 경력
- 1980년
-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 1988년
- 영화진흥공사 자문위원
- 1993년
- 아트시네마 대표이사
- 1995년
-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 2001년
- 아시아디지털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영화인 정보조사
고영남은 충청북도 충주 수안보 출신으로 고교시절 배구선수로 활동했다. 홍익대학교 국문과 재학 중 이광래 교수로부터 희곡론, 연출론 등을 배웠고(한겨레), 대학 재학 중 명동에서 활동했던 극단 신협의 연구원으로 입단하였다. 충무로에서 제작부로 일하던 선배의 제의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육체의 길>(1959)에서 연출부로 일을 시작했다. 이광래, 조긍하, 권영순,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를 하다가 당시 서울극장 대표이자 전국극장연합회 회장이던 곽정환의 제의로 <잃어버린 태양>(1964)의 연출을 맡아 감독데뷔를 했다. <잃어버린 태양>(1964), <명동 44번지>(1965), <소령 강재구>(1966) 등이 연속으로 흥행하면서 고영남은 흥행감독으로 충무로에서 각광받았다. 그는 액션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었고 <결사대작전>(1969), <독수리전선>(1976), <공수특공대작전>(1977) 등과 같은 전쟁영화도 다수 연출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1977)을 영화화했고, 황순원 원작의 <소나기>(1978)를 연출했다. 2000년 <그림일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01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 아시아디지털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 폐암으로 별세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겨레 (http://hanimovie.cine21.com/Movie/person_view.php?person_id=6152)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305&keyword=고영남) * 1996년 예총 제정 예술문화공로상 (영화부문), 사망일-네이버 인물검색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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