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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 대표 이미지

김태수

Kim Tai-soo · 金泰洙

분야
제작/기획
데뷔작품
아내를 빼앗긴 사나이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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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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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1회 부일영화상 1968 최우수작품상 산불
제15회 부일영화상 1972 최우수작품상 분례기

주요 경력

1967년
<산불>제17회 베를린영화제 출품
1968년
<젊은느티나무>제18회 베를린영화제 출품
1968년<맨발의 영광> 제28회 베니스영화제 출품
1968년
<장군의수염>제16회시드니영화제출품
1969년
<지하실의7인>제30회 베니스영화제 출품

영화인 정보조사

김태수는 1966년 태창흥업(泰昌興業)을 설립하고 <법창을 울린 옥이>(1966)를 제작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태창흥업의 대표작품으로는 <장군의 수염>(1968), <춘향전>(1971),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이다(한국영화배급사연구). 태창흥업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70mm촬영기로 촬영된 <춘향전>(1971)은 국내 최초의 70mm 영화였다. <춘향전>으로 인해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70mm 영화를 제작한 국가가 되었다(경향신문). 1967년 개정영화법에 따라 65개의 제작사와 28개의 수입업자가 두 차례의 통폐합을 거쳐 12개사로 압축되었는데 이때 태창영화주식회사도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한양영화사와 신상옥(신필름)이 쇠퇴하고 김태수, 주동진(연방영화사), 곽정환이 부상했다(씨네21). 태창흥업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한 해 12편에서 18편까지 제작했으며 태창흥업에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면 지방에서 제작비 전액이 충당될 정도로 제작과 배급에서 흥행력을 인정받는 영화사였다(네이버지식사전). 김태수가 1983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태창영화사는 이태원이 인수하였고 태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동아닷컴). 김태수는 1995년 태창흥업주식회사를 재창업하였고 2000년 태창엔터테인먼트로 상호를 변경하였다(네이버지식사전). * 참고문헌 네이버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0280) 경향신문 1981년 3월 10일자 12면. 새마을시절, 반공영화 “67년 반공영화 고발을 찍으며”, 씨네21, 1998년 04월 28일 제148호. (http://www.hani.co.kr/c21/data/L980413/1q1e4d0e.html) “애니깽 곽정환· 서편제 이태원 구속 파문”, 동아닷컴.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701/nd_420.html) 김미현, 『한국영화 배급사 연구』, 영화진흥위원회, 2003, 91~97쪽.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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