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89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67 | 영화부문 기술상 | - |
주요 경력
- 1953~4 무대조명기사 서영훈을 통해 시공사에서 무대조명 일을 시작하게 됨
- 1954~9 영화가 흥하게 되며 서영훈과 함께 영화조명기사인 김성춘 문하로 들어가 <자유전선> 조명보로 영화계 입문. 이후 김성춘의 제1조수로 수많은 작품 에 조명으로 참여
- 1959 한국연예주식회사의 <태양의 거리>로 조명감독으로 데뷔 한 뒤 주로 김화랑 감독의 작품에서 조명을 맡아 함, 한국연예주식회사를 확장시키려던 임화수가 구술자를 전속조명감독으로 채용했으나 4.19로 한국연예주식회사 가 몰락
- 1960~72 한국연예주식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멤버들인 차태진, 김기덕, 변인집과 함께 극동흥업에서 작품을 이어감
- 1963 <아낌없이 주련다>(유현목, 1962)로 대종상을 수상하고 제10회 아세아 영화제에 참석, 일본대영촬영소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고, 당시 새로운 조명기자재인 시네킹과 요소라이트를 국내에 수입해 들어옴
- 1979~95 컬러텔레비전으로 전화되는 시기 후배의 권유로 MBC 광고제작사업부에서 광고조명 담당. 1985년에 세종문화로 스카웃되었다가 얼마 후 독립하여 돈암동에서 광고조명 사무실을 운영
- 1995~6 조명감독협회 회장, 일본 조명협회와의 기술교류 추진으로 2인 친선연수진행
- 1996 조명감독협회 산하 조명아카데미 개설
- 1997 조명, 기술 신자재 라이트 워크숍 시행
- 2007 (사)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 자문위원
- 2009 (사)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 자문위원
영화인 정보조사
193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정주 중학교를 졸업하던 1947년 지주계급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압류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하던 중 어머니를 잃고, 형과 함께 남으로 내려온다. 우연한 기회에 명동의 극장, 시공관에서 조명팀으로 있던 서영훈과 함께 일하며 조명일을 접하게 된다. 이후, 서영훈이 <자유전선>(1955)에서 당시 한국영화 기술계의 대부격인 김성춘의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 함께 영화에 입문한다. 김성춘의 퍼스트로 일하던 1959년 <태양의 거리>에서 조명기사로 데뷔하여, 임화수가 세운 한국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하여 활동한다. 그러나 임화수는 4.19로 몰락하게 되고, 한국연예주식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제작자 차태진, 촬영기사 변인집, 감독 김기덕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극동흥업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5인의 해병>(1961), <김약국의 딸들>(1963), <초우>(1966), <내 주먹을 사라>(1966), <대괴수 용가리>(1967) 등의 영화에서 조명을 맡는다. 1970년대 초반 극동흥업의 경영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잠시 영화계를 떠나있다가, 1974년 일본 후지TV에서 기술 연수를 받고 돌아와, 영화 조명 일을 재개한다. 1980~1990년대에는 MBC에서 설립한 광고제작 사업부, 세종문화사 등을 거치며 TV 광고를 만들고, 이후에는 광고 조명 회사인 예광조명을 설립, 운영한다. 1995년 조명감독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한국영화조명 아카데미를 연다. * 참고문헌 한국영화사연구소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 3』, 한국영상자료원, 2007, 167~214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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