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33
배우 (1개)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9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85 | 특별상(조명상) | 추억의 빛 |
|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 2001 | 영화발전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54년
- 극작가 유치진이 운영하던 효제동의 배우학원에 다님
- 1955년
- <망나니비사>에서 스승인 이한찬을 만나 영화 조명 시작. 동국대학교 중퇴
- 1956년
- <인생역마차>를 이한찬과 작업
- 1958년
- 신필림 입사. <어느 여대생의 고백>을 이한찬과 작업
- 1980년
- 한국영화인협회 조명분과위원회 초대 위원장, 영화인협회 이사
- 1992년
- 유공 영화인 수상
- 1996년
- 제34회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 1997년
- 제17회 예총예술문화상 공로상 수상
- 1998년
- 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 회장, 한국영화인협회 상임 이사직 수행, 조명아카데미 신설하여 후진 양성
- 2001년
- 제38회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예총 이사직 수행
- 2002년
- 제39회 대종상 영화제 집행위원
- 2003년
- 제40회 대종상 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인협회 수석 부이사장, 한국예총 이사
영화인 정보조사
1927년에 태어나, 한국전쟁 때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5년경 우연히 신문을 통해 종로5가 효제동에 위치한, 유치진이 운영하던 배우학원을 알게 되었고, 거기를 다니다가 견습생 신분으로 찾아간 <망나니비사>(1955)의 촬영 현장에서 이한찬 조명기사를 만나게 되어, 영화 조명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이한찬의 조수로 <인생역마차>(1956), <자유부인>(1956), <사랑>(1957),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등에서 조명 일을 하고, 1961년 <서울의 지붕밑>에서 조명기사로 데뷔하게 된다. 이때부터 신필름의 조명기사로 일하며 <벙어리 삼룡>(1964),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이조잔영>(1967), <여마적>(1968), <만종>(1970), <반혼녀>(1973), <춘희 75>(1975) 등 신필름이 등록 취소될 때까지 많은 작품에서 조명을 맡아 작업한다. 1970년대에는 <명동의 왕과 박>(1970), <사나이 가슴에 비가 내린다>(1971) 등의 작품을 직접 기획, 제작하기도 했으며, 1990년대 초반까지 촬영 현장에서 조명감독으로 활동한다. 그 외에도 1981년 1대, 1998년부터 8대 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의 협회장으로 일하며 조명 아카데미를 열어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 참고문헌 주제사채록연구팀, 『2009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노인택, 마용천, 함완섭』, 한국영상자료원, 2009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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