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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선

Kim Ho-sun · 金鎬善

분야
감독, 시나리오, 제작/기획
데뷔작품
언덕의 종은 울려도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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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9

주요 경력

1974년
김수용, 백호빈 감독 등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
1981년
영화인협회 기획실 기획위원
1989~1996년 UIP 직배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
1989~96년 한국영화감독협회 회장 역임
1989~94년 사단법인 한국영화인협회 수석 부이사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김호선은 일제시기 저항 연극 활동을 했던 희곡작가이자 연출가였던 작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학생 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연극에서 영화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유현목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한국영상자료원). 유현목 감독 밑에서 10여 년간 조감독으로 일한 뒤 이영일 각본의 <환녀>(1974)로 감독 데뷔했다(동아일보). 김호선 연출, 조선작 원작, 김승옥 각색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서울기준 39만 8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크게 흥행하자 김호선은 충무로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급부상했다(동아일보a, 경향신문a, 한국영화감독사전). 그는 1975년 하길종, 이장호, 이원세, 홍파 감독과 영화평론가 변인식, 안병섭 그리고 소설가 최인호, 김승옥 등과 함께 영상동인 영상시대을 결성하여 한국영화의 부흥을 모색하며, 1977~1978년에 동인지 『영상시대』를 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당시에 본격비평지로 평가받았다(동아일보c, 경향신문d, 한국영화감독사전). 그는 1977년 조해일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겨울여자>(1977)를 연출했다. 각색은 <영자의 전성시대>와 마찬가지로 김승옥이 맡았다(경향신문b). <겨울여자>는 입장권 전회 매진을 기록하면서 크게 흥행했다(경향신문c). 이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이 세웠던 46만 명의 흥행기록을 깨고, 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당시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동아일보e, 한국영화감독사전). 이 영화의 기록적인 흥행으로 김호선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70년대에 가장 뛰어난 영화작가 중 한명으로 추앙받았다(경향신문c). 1980년 김호선은 김수형, 정인엽, 정지영, 홍파, 장미희, 정윤희, 변인식, 최인호 등과 함께 ‘제3영상그룹’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제3영상그룹’은 낙후된 한국영화의 회생을 위해 영화법 개정, 프로듀서 시스템 확립 등을 주장하는 한편, 신인배우양성을 위해 신인배우를 공동으로 모집하기도 했다(경향신문e). 1979년에 <죽음보다 깊은 잠>과 <밤의 찬가>를 만들었고, 1981년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1981년 영화평론가협회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동아일보d). 그러나 이후 연이은 흥행실패로 슬럼프를 겪다가 1989년 작 <서울 무지개>가 흥행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서울 무지개>는 권력층의 섹스 스캔들을 소재로 하여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74년 8월 24일자 5면. 동아일보b 1974년 10월 12일자 5면. 동아일보c 1975년 8월 4일자 5면. 동아일보d 1981년 12월 10일자 12면. 동아일보e 1982년 3울 4일자 12면. 경향신문a 1975년 10월 1일자 7면. 경향신문b 1977년 10월 3일자 6면. 경향신문c 1977년 10월 22일자 7면. 경향신문d 1978년 7월 25일자 7면. 경향신문e 1980년 5월 2일자 5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436&keyword=김호선) * 주요경력, 수상내역(영화)-KMDB, 네이버 인물검색 * 1981년 영화인협회 기획실 기획위원-경향신문 1981년 6월 3일자 12면.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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