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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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32년
- 경성 촬영소 입소
- 1936년
- <미몽>으로 감독 데뷔
- 1954년
- 금성화랑무공훈장
- 1968년
- 공보부장관 공로표창
- 1972년
- 국방부장관 공로표창
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설립된 경성촬영소에 입사하여 이필우의 녹음조수로 일하였다. 양주남은 경성촬영소의 도제 시스템을 통해 여러 기술 분야를 익힌 인물이었다. 1936년 양주남은 경성촬영소의 제6회 작품 <미몽>을 연출하면서 감독이 되었다. 그가 <미몽>을 통해 감독 데뷔를 했지만 식민지 시기 동안은 다른 작품의 감독을 맡지 않았다. 오히려 편집과 녹음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영화령으로 (사)조선영화주식회사가 출범하자 편집 담당으로 입사하였다. 해방 직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 소속으로 <정의의 진격>(1951)등 기록영화의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배뱅이굿>(1957), <모정>, <종각>(1958), <대지의 어머니>(1960), <밀양 아리랑>(1961) 등 5편을 감독하였다. 이밖에 편집 작품으로 <수업료>(1940), <집 없는 천사>(1941), <자유만세>(1946), <마음의 고향>(1949), <피아골>(1955) 등이 있다. 1963년 퇴직할 때까지 군 영화 제작에 관여하였다. 1953년에는 금성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영화기술자 협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한국영화인사전; 대중예술인 사전). * 참고문헌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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