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61
수상내역 2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58 | 연출상 | 잃어버린 청춘 |
| 제1회 부일영화상 | 1958 | 감독상 | 잃어버린 청춘 |
| 제2회 부일영화상 | 1959 | 감독상 | 인생차압 |
| 제2회 산업경제신문사 한국영화상(산경신문영화상) | 1963 | 감독상 | 아낌없이 주련다 |
| 제2회 대종상 영화제 | 1963 | 감독상 | 아낌없이 주련다 |
| 제6회 부일영화상 | 1963 | 감독상 | 아낌없이 주련다 |
|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4 | 감독상 | 잉여인간 |
| 제8회 부일영화상 | 1965 | 감독상 | 잉여인간 |
| 제5회 대종상 영화제 | 1966 | 감독상 | 순교자 |
| 제5회 시카고국제영화제 | 1969 | 아동·청소년 대상 국제영화 부문 우수작품상 | 수학여행 |
| 제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9 | 감독상 | 카인의 후예 |
| 제10회 대종상 영화제 | 1971 | 감독상 | 분례기 |
| 제15회 부일영화상 | 1972 | 감독상 | 분례기 |
|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80 | 감독상 | 사람의 아들 |
| 제28회 대한민국예술원상 | 1983 | 연극·영화·무용 부문 | - |
| 제1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5 | 감독상 | 말미잘(엄마와별과말미잘) |
| 제33회 대종상 영화제 | 1995 | 영예로운감독상 | 말미잘(엄마와별과말미잘) |
| 제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2003 | 예술공헌상 | - |
|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 2005 | 공로상 | - |
| 제15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7 | 아름다운 영화인상 | - |
| 제2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2007 | 영화공헌상 | - |
|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2007 | 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47. 동국 대학교 영화예술 연구회 창설, 회장. 작품 '海風' 제작. 1947년부터 조감독 생활(조정호,임운학,김성민,정창화,장화연,이규환,김흥감독 등)
- 1955. 영화감독 독립
- 1963. 동국 대학교 연영과 강사, 씨네.포엠 클럽 창설, 회장, 실험영화 <線><손>제작
- 1964. 각 신문 新春文藝 심사위원(계속)
- 1965. 서을 연극학교 (드라마 센터) 강사, 서울 市文化賞 심사위원(계속)
- 1966. 세계문화자유회의 회원. 이곳 세미나에서 <은막의 자유>발표, 이만희 감독이 <7인의 여포로>로 입건된 것을 항의,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 무죄.
- 1969. 미,영,독 정부초청으로 20여개국 영화계 시찰
- 1970. 한국소형영화동호회 창설, 회장
- 1971.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집행위원, 심사위원(계속), 미스 코리아 심사위원(계속)
- 1975. 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일보 예술상 심사위원(계속), 서울 市文化賞, 대종상 심사위원(계속)
- 1976. 동국 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취임, 감독 위원회 고문
- 1991. 春史영화제 심사위원장, 日,韓 문화협회초청 영화계 시찰, 동국대학교 정년퇴임, 명예교수(계속 출강)
- 1993. 일본문화연구회 회원, 한국 자유연맹 이사
- 1994. 三 . - 문화상 심사위원
영화인 정보조사
1925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학내에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재학 당시부터 영화 제작과 탐구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영화감독사전). 정창화 감독의 <최후의 유혹>(1953)에서 각본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에서 조감독을 맡은 후 1956년 <교차로>의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유전의 애수>(1956), <인생차압>(1958), <구름은 흘러도>(1959) 등을 연출하며 주목 받던 그는 1961년 이범선 원작의 <오발탄>으로 평단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4월 13일의 첫 개봉 당시에는 관객들에게 별 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5.16 군사정변 이후 상영 중지 처분을 받았으나, 제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 출품되면서 1963년 세 번째로 개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영일 등 당대의 평자들에 의해 “한국 리얼리즘의 절정을 이루는 영화”로 평가받았다(한국영상자료원a). 이 작품 이후에도 <김약국의 딸들>(1963), <잉여인간>(1964), <순교자>(1965), <막차로 온 손님들>(1967), <카인의 후예>(1968) 등 문학작품 원작을 바탕으로 진지한 영화적 탐구를 지속한 작품들을 만들어 주목 받았으며, 실험적 색채가 강한 <춘몽>(1965)은 ‘음화제조죄’ 명목으로 박정희 정권이 감독에게 직접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한국영상자료원b). 한편으로 그는 <특급 결혼작전>(1966), <공처가 삼대>(1967), <몽땅 드릴까요>(1968) 등 코미디 장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는 <수학여행>(1969), <분례기>(1971), <장마>(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이 있으며, 마지막 작품은 1994년작 <말미잘>이다. 당대 다른 감독들에 비해 과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제작자로도 변신하여 <로보트 태권V>(1976)를 시작으로 한 네 편의 시리즈, <날아라 원더공주>(1978), <콩쥐팥쥐>(1978),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 등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76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 『한국영화 발달사』, 『세계영화감독론』, 『영화인생』 등 다수의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2009년 6월 숙환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09년 6월 28일자 한국영상자료원a,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오발탄> 정보. 한국영상자료원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춘몽> 정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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