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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Yu Hyun-mok · 兪賢穆

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최후의 유혹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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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2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1958 연출상 잃어버린 청춘
제1회 부일영화상 1958 감독상 잃어버린 청춘
제2회 부일영화상 1959 감독상 인생차압
제2회 산업경제신문사 한국영화상(산경신문영화상) 1963 감독상 아낌없이 주련다
제2회 대종상 영화제 1963 감독상 아낌없이 주련다

주요 경력

1947. 동국 대학교 영화예술 연구회 창설, 회장. 작품 '海風' 제작. 1947년부터 조감독 생활(조정호,임운학,김성민,정창화,장화연,이규환,김흥감독 등)
1955. 영화감독 독립
1963. 동국 대학교 연영과 강사, 씨네.포엠 클럽 창설, 회장, 실험영화 <線><손>제작
1964. 각 신문 新春文藝 심사위원(계속)
1965. 서을 연극학교 (드라마 센터) 강사, 서울 市文化賞 심사위원(계속)

영화인 정보조사

1925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학내에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재학 당시부터 영화 제작과 탐구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영화감독사전). 정창화 감독의 <최후의 유혹>(1953)에서 각본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에서 조감독을 맡은 후 1956년 <교차로>의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유전의 애수>(1956), <인생차압>(1958), <구름은 흘러도>(1959) 등을 연출하며 주목 받던 그는 1961년 이범선 원작의 <오발탄>으로 평단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 4월 13일의 첫 개봉 당시에는 관객들에게 별 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이 작품은 5.16 군사정변 이후 상영 중지 처분을 받았으나, 제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 출품되면서 1963년 세 번째로 개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영일 등 당대의 평자들에 의해 “한국 리얼리즘의 절정을 이루는 영화”로 평가받았다(한국영상자료원a). 이 작품 이후에도 <김약국의 딸들>(1963), <잉여인간>(1964), <순교자>(1965), <막차로 온 손님들>(1967), <카인의 후예>(1968) 등 문학작품 원작을 바탕으로 진지한 영화적 탐구를 지속한 작품들을 만들어 주목 받았으며, 실험적 색채가 강한 <춘몽>(1965)은 ‘음화제조죄’ 명목으로 박정희 정권이 감독에게 직접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한국영상자료원b). 한편으로 그는 <특급 결혼작전>(1966), <공처가 삼대>(1967), <몽땅 드릴까요>(1968) 등 코미디 장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는 <수학여행>(1969), <분례기>(1971), <장마>(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이 있으며, 마지막 작품은 1994년작 <말미잘>이다. 당대 다른 감독들에 비해 과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제작자로도 변신하여 <로보트 태권V>(1976)를 시작으로 한 네 편의 시리즈, <날아라 원더공주>(1978), <콩쥐팥쥐>(1978),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 등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1976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 『한국영화 발달사』, 『세계영화감독론』, 『영화인생』 등 다수의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2009년 6월 숙환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09년 6월 28일자 한국영상자료원a,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오발탄> 정보. 한국영상자료원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춘몽> 정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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