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윤주 대표 이미지

정윤주

Jeong Yoon-joo · 鄭潤柱

분야
음악
데뷔작품
죽엄의 상자 (1955)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333

전체보기

수상내역 11

주요 경력

1937년
경성전기학교 토목과 수석 졸업 후 경상남도 도청 토목과 취직
1939년 10월
임동혁(任東爀)에게 작곡 사사
1945년
통영 중학교 음악교사
1952년
극작가 유치진의 아동극을 무용곡으로 바꾼 <까치의 죽음> 전주곡 작곡. 5월에 부산 광복동 부산극장에서 초연
1953년
주한 미국문화원 리버티 프로덕션(Liberty Production) 음악담당직

영화인 정보조사

1918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37년 경성전기학교 토목과를 졸업했으며 한강수력발전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이승학, 임동혁에게 성악과 작곡을 사사했다. 해방 후 통영으로 돌아가서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했으며, 1946년부터 통영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고향 통영으로 피난 온 유치진을 만나 그의 아동극 <까치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 전주곡을 1952년에 완성했다. 이 작품의 음악회를 계기로 1953년부터 주한미국공보원 리버티프로덕션의 음악 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이때 김기영의 <죽엄의 상자>(1955)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문화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다. 1958년부터는 국립영화제작소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음악가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부터 유두연의 <사랑의 십자가>(1959), 한형모의 <여사장>(1959) 등 상업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하였으며,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1961), <폭군연산>(1962), <쌀>(1963), <벙어리 삼룡>(1964) 등으로 이어지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3년 국립영화제작소를 떠나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음악 작곡가로 전념했다. 1962년 제1회(<연산군>)부터 1963년 제2회(<지옥문>), 1965년 제4회(<벙어리 삼룡>), 1982년 제21회(<삐에로와 국화>)까지 네 번에 걸쳐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받았으며,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부일영화제 등에서도 음악상, 주제가상 등을 받았다. 영화음악 외에 순수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다수의 창작활동을 통해 1977, 78년 제4회, 5회 한국작곡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79년부터 한국작곡가협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7년 별세했다. * 참고문헌 오희숙, 「특집: 한국음악 20세기 - 정윤주(鄭潤柱)」, 『음악과 민족』제26호(2003), 125-161쪽. [작성: 김한상]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