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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 대표 이미지

이경순

Lee Kyeong-sun · 李敬淳

분야
음향효과, 동시녹음
데뷔작품
내가 넘은 삼팔선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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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3

주요 경력

1941년
일본 빅타 축음기 주식회사 경성영업소 라디오부
1947년
주한미국공보원녹음실
1951년
진해협동영화제작소 녹음 및 현상실
1954년
공보처 영화과녹음실
1958년
정릉녹음실, 수도영화 안양녹음실 설치

영화인 정보조사

1921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났다. 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5년 서울로 거처를 옮겨 빅터축음기주식회사에 실습연구생으로 들어갔다. 1937년에는 빅터사에서 본격적으로 현장연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경성전기학교(京城電氣學校) 야간부에 들어가 1941년에 졸업했다. 이 무렵 서울 약초극장(若草劇場)에서 RCA토키장치의 출장서비스를 담당하게 되었고, 빅터사에서 알게 된 최칠복을 따라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영화녹음 현장을 견학하기도 했다고 한다. 해방 후 경성전기회사(京城電氣會社) 통신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최칠복의 소개로 주한미군 502부대 녹음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며, 이필우, 이명우, 김학성 등과 뉴스영화 및 문화영화를 제작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주한미국공보원과 함께 진해로 내려가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1951년 당시 국방부가 제작하던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의 녹음을 위한 시설 대여 요청을 미공보원이 거절한 데 충격을 받아서 퇴직하게 된다. 이때 조백봉, 김형근, 김봉수 등 함께 나온 동료들과 함께 목욕탕을 개조해 영화협동제작소라는 녹음실을 개설했다고 하며, 손전의 <내가 넘은 삼팔선>(1951), 신상옥의 <악야>(1952), 정창화의 <최후의 유혹>(1953) 등 젊은 감독들의 데뷔작 녹음을 담당했다. 이후 이규환의 <춘향전>(1955), 홍성기의 <열애>(1955), <춘향전>(1961), 신상옥의 <지옥화>(1958), 김기영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 등 중요한 작품들에 참여했으며, 1962년 한양녹음실, 1969년 (주)한양스튜디오로 개칭한 자신의 스튜디오를 통해 1990년대 후반까지도 왕성하게 영화녹음을 담당했다(이경순). 한국영화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2008년 5월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08년 5월 22일자 이경순, 『소리의 창조: 나의 영화녹음 오십년』, 한진출판사, 1996.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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