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해윤

Lee Hae-yoon · 李海潤

분야
의상
데뷔작품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1956)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458

전체보기

수상내역 5

주요 경력

1943~45년 일본군 사령부 병참대대 근무
1950년
결혼
1953~55년 편물점 운영
1955년
<자유전선>과 <춘향전>에 단역 배우로 출연
1956년
<단종애사>로 영화 의상 담당 시작

영화인 정보조사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에서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하였다. 같은 해 김홍 감독의 <자유전선>에서도 연기했으나, 본인의 연기가 성에 차지 않아 그만두고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매일경제). 1956년 <단종애사>에서부터 수염과 가발을 떠주면서 의상부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당시의 사극 붐에 맞추어 한복 제작 쪽으로 관심을 옮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증을 위해 운형궁의 상궁들로부터 도복, 관복, 당의 등을 구하고, 규장각의 장서들을 연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거쳐 사극 의상에 있어서 그 누구에도 비할 수 없는 대가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씨네21a). 1960년대 전쟁 영화 붐이 일던 시절에는 인민군, 국군, 일본군, 중국군, 러시아군 등 다양한 국적의 군복 제작을 맡기도 했으나, 그러한 과중한 일거리 탓으로 1968년 뇌출혈로 쓰러져, 40여 일간 입원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 의상일로 복귀한다. 사극 뿐만 아니라, 현대극에서의 의상 역시 모두 직접 제작하는 것을 고집하고, 의상의 태를 살리기 위해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모두 풀을 먹이는 완벽주의로 유명하다(씨네21b). 1950년대 의상부라는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던 시절부터 의상 일을 시작하여 홀로 한국 영화의 거의 모든 중요한 작품들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경력은 1990년대 <장군의 아들>(1990), <사의 찬미>(1991), <서편제>(1993)를 거쳐 1996년의 <애니깽>을 마지막으로 은퇴에 이른다. 그러한 50여년의 경력은 양수리 종합 촬영소와 자신의 거처에 무려 2만여 벌의 의상으로 간직되어 있으며(매일경제), 그러한 유산은 아들에게 전해져 그의 아들 권유진 역시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참고문헌 매일경제 1993년 11월 14일 16면 ‘돈 너무 많이 줘서 신필림 나왔어’, 『씨네21』a, 342호(2002년 2월 20일) ‘옷의 태 살리려고 팬티까지 풀 먹였어’, 『씨네21』b, 346호(2002년 4월 3일) [작성: 황미요조]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