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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대표 이미지

최훈

Choi Hoon · 崔薰

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춘향전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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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3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2회 대종상 영화제 1973 감독상 수선화
제4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1993 춘사영화예술인상 -
제40회 대종상 영화제 2003 영화발전공로상 -

주요 경력

1942 평남 신안주 공립 청강국민학교 훈도
1946 평남 안주여자중학교 교사
1949 '아세아영화공사'를 만들어 안종화감독이 "김상옥 혈사"제작했으나, 6.25로 수포로 돌아감
1950 유현목, 하한수, 정일택과 함께 이규환 감독의 연출조수로 "춘향전"
1958 "모녀"로 데뷔

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평안 교원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와서 1942년부터 신의주 공립 청강공립학교에서 교원을 시작하였고, 1946년에는 안주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7년 서울 서대문으로 옮겨온다. 1948년에 아세아영화공사를 세우고, 1949년 안종화 감독의 연출로 <김상옥 혈사>을 제작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제작이 중단되고 필름 또한 분실하게 된다. 전쟁 때 공군본부 정훈감실에서 제작한 홍성기 감독의 <출격명령>에 조감독으로 일하며 처음으로 연출 수업을 받게 되고(한국영화감독사전), 전쟁 후에는 유현목, 하한수, 정일택 등과 함께 이규환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춘향전>(1955) 등의 영화에서 일하며 연출 수업을 받는다. 연출 데뷔작은 1958년의 <모녀>이고, 이어 연출한 <사모님>(1959) 등의 초기작에서 건강한 모랄과 생활성을 주제로 삼은 격조 높은 홈드라마(동아일보), 견실하고 시정가화(市井佳話)의 서민적 모랄을 지닌 작품(서울신문) 등 주로 교훈적인 소시민 영화를 내놓는 한편, 교직 생활의 경험을 살려 <느티나무 있는 언덕>(1958), <어느 여교사의 수기>(1960) 등의 교육, 계몽성을 강조하는 영화를 만든다. 이후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반의 사극 붐과 함께 <동학란>(1962), <양귀비>(1962), <사랑의 동명왕>(1962) 등을 연출하고, <장마루촌의 이발사>(1959)로 전쟁 기억과 가족의 문제를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결합시켜 히트한다. 그러한 멜로드라마적 경향은 1963년의 <아빠 안녕>으로 15만 명이 넘는 흥행 성공작을 내놓으며, 주요 연출 스타일이 된다. 당시 <아빠 안녕>에 대해 한 신문의 평자는 주중 오전임에도 장내는 여성관객들과 만원을 이루고 있는데, 그들의 손은 행커치프를 눈에 갖다 대기에 어지간히 바쁘다. 홍루파 팬에게는 그야말로 다시없는 A급에 속하는 최루신파의 아찔한 비극(조선일보)이라고 평하는데, 이러한 스타일은 <목요일에 만납시다>(1964), <가짜여대생>(1965), <파문>(1968) 등을 거쳐 1969년 <물망초>로 또다시 관객 15만 명이 들며 히트한다. 1970년대에는 한국영화계의 현안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한국영화인협회의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1974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 각 분과 위원회의 대표들로 구성된 귄익옹호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장이 되어 영화인 임금 현실화를 위한 논의를 주도하기도 한다. 2005년 11월 6일 타계한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9년 3월 29일 4면 서울신문 1959년 10월 11일 석간 4면 조선일보 1963년 12월 19일 5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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