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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기

Hong Seong-ki · 洪性麒

분야
감독, 제작/기획, 촬영, 편집
데뷔작품
독립전야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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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25회 대종상 영화제 1986 공로상 -

주요 경력

1943.4 만주국 영화협회 제작부 연출과 조감독 피명
1944.2 시나리오 "파문" 일본영화 현상모집에 입선(당시 19세), 우찌다도모 조감독
1945.9 해방으로 인하여 귀국. 고려영화사에 입사
1946.5 미국 공보원(D.C.I)위촉으로 문화영화 3편 감독
1946.9 홍성기 프로덕션 설립(대표이사)

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 충청북도 중원에서 출생했다. 중국 안동의 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만주 국립 영화학교 연출과를 졸업했다. 19세에 일본영화 시나리오 현상모집에 당선된 「파문」으로 등단했으며, 일본 시대극으로 유명한 우치다 도무(內田吐夢)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해방 뒤 귀국해 고려영화사에 입사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최인규의 <자유만세>의 조감독으로 연출부 활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의 컬러영화 <여성일기>로 1949년 감독 데뷔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애인>(1956), <애원의 고백>(1957), <실락원의 별>(1957), <별아 내 가슴에>(1958) 등 다수의 멜로드라마를 연출하였다. 그 중 십만 명의 관객을 모은 흥행작인 <실락원의 별>은 기혼의 소설가가 여대생과 불륜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 역의 주증녀의 호연이 돋보이던 작품이었다. 이듬해 연출한 <별아 내가슴에>(1958) 역시 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하였고, 홍성기는 이 작품에서 만난 17세 연하의 김지미와 결혼하였다. 호소력 있는 멜로드라마로 “1959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약 8년간 가장 잘 나가는 대표적인 흥행감독”(한국영화감독사전)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성기는, 히로인 김지미를 ‘춘향’으로 내세운 야심작 <춘향전>을 내놓았지만 신상옥의 <성춘향>(1961)년에 밀려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이 두 작품은 모두 8천환이라는 당대의 거대 제작비와 컬러 시네마스코프를 경쟁적으로 사용했고, 그 시기를 대표하던 감독들인 홍성기와 신상옥, 그리고 대표적인 여배우인 김지미와 최은희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낳으면서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심지어는 영화제작협회는 이 두 작품을 지지하는 세력인 구파와 신파로 나뉘면서 대립하기도 하였다(경향신문). 1962년 김지미와의 이혼 후 <대석굴암>(1965), <별은 멀어도>(1969) 등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전성기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의 마지막 연출작은 <내가 버린 여자2>(1980)이다. 1986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오랜 와병 끝에 2001년 2월 3일 수원의 자택에서 78세의 생을 마감했다(씨네21).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1년 1월 18일자 4면. 한국멜로의 황금시대, 별이지다,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 『씨네21』제289호(2001년 2월 발행)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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