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16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회 대종상 영화제 | 1962 | 신인상 | 5인의 해병 |
주요 경력
- 1956년
-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단종애사>,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조감독
- 1961년
- 차태진과 극동흥업 창립. <5인의 해병>으로 감독 데뷔. 이때까지 편집 작업도 함
- 1969년
- BFC(야구동호인회) 대표
- 1973년
- 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부위원장
- 1978~98년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 영화과 교수
- 1980년
- 영화검열 심의위원
- 1984년
- 1984 대종상 본심심의위원
- 1986~88년 공연윤리위원회 영화심의위원
- 1989년
- 1989 대종상 본심심의위원
- 1993년
- 공연윤리위원회 비디오심의위원, 1993 대종상 본심심의위원
- 1995년~
- 대종상 집행위원
- 1998~2001년 서울예술전문대학 학장
- 2001년~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2003~05년 부산예술대학 학장
- (저술내용)■ 저서
- 『한국영화의 당면과제』
- 『한국대학 영화교육의 문제점』
-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의 제작과정』, 한국대학영화교수협의회
- 『소형영화 영상작품 실기 입문』, 해뜸출판사, 1989.
- 『영화촬영』, J.크리스 말키비츠 저, 김기덕 역, 영화진흥위원회 총서, 집문당, 1999.
- 『16mm 촬영기재 매뉴얼』
- ■ 논문
- 「북한영화의 제작기술 현황」, 『통일정책54』, 국토통일원평화통일연구소, 1979. 12.
- 「북한의 영화제작기술상의 문제점」, 『아세아공론 90』, 한국구게문화협회, 1980. 4.
- 「휴매니즘 상실한 지루한 극화: 북한문화의 현주소」, 『북한 147』, 북한연구소, 1984. 3.
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준비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여 미 공군의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특수수사대)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OSI에서 근무하던 중, 당시 영화 지망생으로 시나리오를 습작하던 이종기를 알게 되며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영화 쪽으로 본격적 입문을 하게 된 계기는 전창근 감독 연출, 미공보부 제작의 영화 <불사조의 언덕>(1955)에서 통역장교 역할을 제안 받으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미국 측 배우들과의 신장 차이의 문제로 출연대신, 연출부에서 일하며 영화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전창근 감독과 한형모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연출 공부를 하는 한편, 현상, 편집, 녹음 등 기술적인 측면을 익히며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해 배운다. 1960년 4.19, 5.16을 거치며 사라진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로부터 나와, 1961년 한국연예주식회사의 제작본부장이던 차태진을 대표로 하는 극동흥업사를 함께 설립하고, 전무이사 겸 전속 감독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설립된 그 해 <5인의 해병>으로 감독 데뷔한다. 이후 <가정교사>(1963), <맨발의 청춘>(1964), <말띠신부>(1966), <청춘고백>(1968) 등의 청춘물, <남과 북>(1965), <용사는 살아있다>(1965), <124 군부대>(1970) 등의 전쟁물, <오늘은 왕>(1966), <친정어머니>(1966) 등 가족 멜로드라마를 비롯해 <대괴수 용가리>(1967)와 같은 SF 괴수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연출한다. 1977년 <영광의 9회말>을 마지막 연출작으로, 서울예술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진을 양성한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도서출판 이채, 2005년, 7~59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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