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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Kim Kee-duk · 金基悳

분야
감독, 편집
데뷔작품
삼일독립운동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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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회 대종상 영화제 1962 신인상 5인의 해병

주요 경력

1956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단종애사>,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조감독
1961년
차태진과 극동흥업 창립. <5인의 해병>으로 감독 데뷔. 이때까지 편집 작업도 함
1969년
BFC(야구동호인회) 대표
1973년
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부위원장
1978~98년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 영화과 교수

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준비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여 미 공군의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 특수수사대)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OSI에서 근무하던 중, 당시 영화 지망생으로 시나리오를 습작하던 이종기를 알게 되며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영화 쪽으로 본격적 입문을 하게 된 계기는 전창근 감독 연출, 미공보부 제작의 영화 <불사조의 언덕>(1955)에서 통역장교 역할을 제안 받으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미국 측 배우들과의 신장 차이의 문제로 출연대신, 연출부에서 일하며 영화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전창근 감독과 한형모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연출 공부를 하는 한편, 현상, 편집, 녹음 등 기술적인 측면을 익히며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해 배운다. 1960년 4.19, 5.16을 거치며 사라진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로부터 나와, 1961년 한국연예주식회사의 제작본부장이던 차태진을 대표로 하는 극동흥업사를 함께 설립하고, 전무이사 겸 전속 감독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설립된 그 해 <5인의 해병>으로 감독 데뷔한다. 이후 <가정교사>(1963), <맨발의 청춘>(1964), <말띠신부>(1966), <청춘고백>(1968) 등의 청춘물, <남과 북>(1965), <용사는 살아있다>(1965), <124 군부대>(1970) 등의 전쟁물, <오늘은 왕>(1966), <친정어머니>(1966) 등 가족 멜로드라마를 비롯해 <대괴수 용가리>(1967)와 같은 SF 괴수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연출한다. 1977년 <영광의 9회말>을 마지막 연출작으로, 서울예술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진을 양성한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도서출판 이채, 2005년, 7~59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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