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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Kim Soo-yong · 金洙容

분야
감독
데뷔작품
공처가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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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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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2

주요 경력

1950년 11월 28일
6·25 종군, 국방부 정훈국 근무 (육군대위 예편)
1955년 4월 30일
국방부 군영화촬영소
1958년 12월 10일
<공처가>로 극영화 감독 데뷔
1973년
서울예대, 중앙대, 동국대, 단국대, 경희대 강사
1981년 6월 30일
청주대 예술대 교수

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안성공립농업학교를 다니던 시절 문학과 예술이 관심이 많았고, 3학년 되던 때 해방이 되자 안성의 극장 무대를 빌려 3.1 운동에 관한 연극인 <대지의 노을>의 희곡을 쓰고, 주연, 연출하기도 한다. 졸업 후, 서울사범학교를 다니며 연극부 활동을 한다. 한국 전쟁 당시 통역 장교로 근무하고, 휴전 이후 국방부 정훈국에 배치되어 전사 편찬 작업을 하다가 그 즈음 신설된 영화과로 옮기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영화과의 과장이던 선우휘의 지휘 아래 30여 편의 기록 영화와 극영화를 만들며 영화에 대해 배운다. 당시 문관으로 있던 양주남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조감독으로 지목하면서 파견학습의 형식으로 <배뱅이굿>의 조감독 일을 수행하며 연출 수업을 시작한다. 감독 데뷔는 그 <배뱅이굿>의 제작자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공처가>. 당시 아직 군인 신분이었던 탓에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월요일 새벽 귀대할 때까지 촬영을 강행하는 스케줄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출한 영화가 <삼인의 신부>(1959), <구혼 결사대>(1959)이며 그 이후로는 군대를 전역하고 본격적인 영화 연출의 길로 나선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인터뷰365). 데뷔 초기작은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 <청춘교실>(1963), <내 아내가 최고야>(1963) 등 일련의 업치락 뒤치락 코미디를 만드는 코미디 감독이란 딱지가 붙다시피(경향신문) 했는데, <굴비>(1963)부터 연출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장르로서 보자면 역시 코미디 영화에 속하는 <굴비>는 이후 평자들에 의해 <혈맥>(1963), <갯마을>(1965) 등과 함께 리얼리즘 영화로 다시 분류되기도 했다(동아일보). 이후의 작품들은 <안개>(1967), <만선>(1967), <토지>(1974), <산불>(1977), <화려한 외출>(1977), <만추>(1981) 등을 거쳐 1999년의 <침향>에 이르기까지 총 109편에 이르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준다. 초기의 코미디 연출 시절을 지난 이후의 작품들은 주로 문예영화라 할 수 있는 작품들로 적지 않은 작품 수에도 높으면서도 고른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연출작 가운데 <안개>(1967),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7), <만추>(1981) 등은 1960, 1970년대 한국 영화사 속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한 40여 년 동안의 영화 인생은 2005년 『나의 사랑 씨네마』라는 제목의 회고록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3년 5월 18일 8면 동아일보 1982년 11월 30일 12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인터뷰 365-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김수용 감독 (http://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1840&ctcd=32) [작성: 황미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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