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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Ree Kyoung-ja · 李敬子

분야
편집, 스크립터
데뷔작품
돈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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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1

주요 경력

1932 아버지 이홍록과 어머니 홍동식 사이 6남 4녀 중 장녀로 출생하였다.
1950-1953 무학중학교 6학년 6.25 전쟁을 맞고, 경기도 이천 등지로 피난을 다니다 다시 서울에 정착한다.
1954-1955 주간 잡지사에서 기자로 6개월간 근무하다, 친척의 소개로 양복점 조합 일을 2년간 맡아 한다.
1956 대한합창단에서 활동하다 만난 친구와 돌체다방을 다니다 그곳에서 감독 최진을 만나 <애정파도>(문화성)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1957-1962 유현목, 조긍하, 김소동, 안종화, 임원직, 이만희, 박상호 감독 등의 문하에서 5년간 11작품에서 스크립터로 활동하며 편집실에 드나들면서 이 시기에 어깨너머로 편집기술을 익힌다.

영화인 정보조사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의상을 담당하던 이해윤, 현상과 편집을 담당하던 우갑순, 편집의 김영희 등과 함께 한국영화계의 많지 않은 여성 스탭 중의 한명이며, 현동춘, 김희수 등과 함께 1960년대부터 활동한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편집기사 중 한명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 이후, 10남매의 맏이로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일을 하던 중, 친구와 드나들던 충무로의 돌체다방에서 감독 최진을 알게 되고, 그의 소개로 문화성 감독의 <애정파도>(1956)에서 스크립터 역할을 하며 영화계에 입문한다. 그 후로 5년 동안 유현목, 김소동, 조긍하 등 감독들의 연출부로 활동하며 영화에 대해 익히던 중, 1962년 신필름이 원효로로 확장 이전하며 편집 견습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신필름에 입사한다. 그렇게 3년을 일하며 편집을 익힌 후, 신필름을 나와 여관에서 편집하면서 몇 년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1960년대 중반 대한극장 옆에 개인편집실을 연다. 1999년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비선형 편집으로도 영역을 넓혀 <파라다이스 빌라>(2000), <싸울아비>(2001), <아리랑>(2002) 등을 작업한다. 2002년 <아리랑>을 마지막 작품으로 은퇴하기까지 40여 년 동안 편집을 하며 <수선화>(1973), <호국 팔만대장경>(1978),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청송으로 가는 길>(1990)<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만무방>(1994), <영원한 제국>(1995) 등 일곱 차례에 걸쳐 대종상 편집상을 수상한다. 2006년 제4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영화발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 참고문헌 심혜경, “구술채록자료집-이경자”, 한국영상자료원, 2008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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