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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표

Lee Hyung-pyo · 李亨杓

분야
감독, 시나리오, 제작/기획
데뷔작품
Korean Artist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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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4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68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애하

주요 경력

1943 조선 미술 전람회 (現 국전) 서양화 부문 입선
1949 주한 미8군 홍보지 Korea Graphic 편집 보좌관
1950 주한 미국 공보원(USIS) 영화제작 보좌관(기록영화 50편 제작)
1952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 홍보 고문
1952~1953 미국 CBS,NBC TV특파원으로 뉴스 및 기록영화 제작

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 황해도 출생으로,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주한 미8군 홍보지 『Korean Graphic』에서 편집보좌관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주한미국공보원 영화과에서 영화제작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점령치하의 서울에서 조선미술가동맹의 미술가로 활동하게 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진해로 내려가 미공보원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제작보좌관 겸 통역으로 일했다. 그러나 조선미술가동맹 활동이 문제 되어 미공보원에서 해고된 후 1952년부터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에 들어갔다. 여기서 미국 녹음기사 테드 코넌트와 알게 되어 공동 작업을 시작했으며, <한국의 미술가(Korean Artist)>, <위기에 처한 아이들(Children in Crisis)>(1955) 등의 문화영화를 공동으로 감독했다. 1953년부터 공보처 영화과 촉탁으로 현상시설 운영을 주관했으며, 1955년부터는 공보처 산하 대한영화사 사무장으로 근무하며 <대한뉴스>등을 제작했다. 공보처 시절 신상옥을 알게 되어 <젊은 그들>(1955)의 각색을 맡게 되었으며, 1959년 공보처를 나와 신상옥이 주도하던 서울영화사에 입사했다. 감독 데뷔는 1961년 <서울의 지붕밑>을 통해서였으며, 이후 <대심청전>(1962), <말띠여대생>(1963), <청등홍등>(1968), <산에 가야 범을 잡지>(1969), <애권>(1980), <관속의 드라큐라>(1982) 등 다양한 장르의 대중적 영화들을 만들었다. 1990년 한국 최초의 서클비전 영화 <내 사랑 금수강산>을 제작하여 독립기념관 원형극장에서 상영했으며, 전쟁기념관 전시 자문위원, 1993년 대전엑스포 대한민국 정부관 전시 총연출, 1998년 엑스포 산업기술(EXPO Techno-industries)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유영국미술문화재단). 201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10년 4월 26일자 유영국미술문화재단 편, 『2005년도 한국근현대예술사구술채록연구시리즈: 이형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6, 3-10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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