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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Seo Jeong-min · 徐廷珉

분야
촬영
데뷔작품
경상도 사나이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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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0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3회 대종상 영화제 1964 신인상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제7회 부일영화상 1964 촬영상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제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5 촬영상 흑맥
제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67 영화부문 기술상 만추
제5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7 촬영상(흑백) 만추

주요 경력

19334년 1월 5일 경기도 인천 출생
1940년
함경남도 함흥으로 이주
1941년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주. 청진국민학교 입학
1945년 2월
인천으로 이주
1947년
인천 신흥 초등학교 졸업, 인천중학교 입학

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에 암실을 차리고 직접 촬영과 현상을 하며 사진을 익힌다. 그러다가 필름 유제를 직접 개발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려대학교 화학과에 들어간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우연히 선배의 친구인 영화감독 박성복의 추천으로 홍일명의 촬영부에 들어가며 영화에 입문하게 된다(한국영화를 말한다). 촬영부로 일하며 얻은 현장 지식에 『서양회화사』, 『구도론』, 『영화기술』 등 일본에서 나온 미술서, 영화기술서 등을 보며 이론공부를 결합하며 노하우를 쌓아간다(한국영화를 말한다). 촬영감독 데뷔는 1961년 임원직 감독의 <촌놈 오복이>를 통해서였으며, 1960년대에는 이만희 감독과 콤비를 이루어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부터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검은 머리>(1964), <마의 계단>(1964), <7인의 여포로>(1965), <만추>(1966), <기적>(1967) 등 작품의 촬영을 맡는다. 1970년대에는 임권택 감독의 <명동잔혹사>(1972), <증언>(1973),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등의 영화를, 1980년대에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3), <무릎과 무릎사이>(1984) 등을 작업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김기덕 감독의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파란대문>(1998), <수취인불명>(2000) 등의 작업을 하는 한편, <리베라메>(2000), <여고괴담>(1998), <여고괴담 세번째이야기 - 여우계단>(2003) 등의 영화를 작업한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도서출판 이채, 2005, 101~143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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