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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 대표 이미지

이재웅

Lee Jae-woong · 李在雄

분야
동시녹음
데뷔작품
검풍연풍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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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6

주요 경력

1957 공보부 대한영화사 녹음실에 입사
1958 공보부에서 국립영화제작소를 설립하게 되자, 김형중과 녹음실, 현상실 등의 기계 설비를 함께 하게 된다. 이경순, 손인호의 녹음 조수로 공보부와 대한영화사, 국립영화제작소를 오가며, <대한뉴스>, 문화영화, 기록영화를 동시녹음, 후시녹음 등을 담당
1960-61 군입대
1961-62 주간에는 공보부에서 일을 하고 야간에는 만리동 대영녹음실(대표: 김봉수)에서 작업
1964-66 결혼 후 공보부에 사표를 내고 만리동 대영녹음실로 이직

영화인 정보조사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전기과 1년이던 1957년 아버지를 갑작스레 여의고, 삼촌 안종화 감독과, 아버지 이정희가 공보부 영화과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역시 공보부에 자리잡으며 영화에 입문한다. 공보부 가운데에서도 전기과로서의 전공과 관심을 살릴 수 있는 녹음실 근무를 시작한다. 1958년 공보부에서 국립영화제작소를 설립하게 되자, 김형중과 함께 녹음실, 현상실 등 설비를 하고, 이경순, 손인호 등 녹음기사의 조수로 문화영화와 기록영화의 동시, 후시 녹음을 담당한다. 1961~1962년 사이 만리동에 있던 대영녹음실과 공보부를 오가며 이지혁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여 민간 극영화 녹음 작업을 하는데, 처음 크레딧을 올린 영화는 <검품연풍>(1962)이다. 1963년 이후로 공보부를 그만두고 극영화 녹음으로 옮겨와서, 1966년 국일녹음실을 열고, 1968년 4트랙 입체영화 <몽녀>를 작업한다. 1969년에는 한양녹음실에 입사하여 70mm <춘향전>을 6트랙으로 녹음한다. 1978년 영화진흥공사에 입사하여 일본과 미국의 스튜디오를 연구하여 영화진흥공사 녹음실을 설비하고, 1980년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아벤고 공수여단>(1982),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등의 영화에서 본격적인 동시녹음을 시작한다. 1988년에는 돌비 연구소로부터 돌비 스테레오 시스템을 들여와 <돌아이-둔버기>(1988)를 작업하였으며, 1995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마지막 작품으로 음향감독을 은퇴한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음향감독으로 일하며 여러 기술적 변천을 주도하고, 수용하는 기술 스탭인 동시에, 감독으로서도 활동하여 <지구여 멈춰라 내리고 싶다>(1974), <바다의 사자들>(1976) 등 두 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한다(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화사연구소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3』, 한국영상자료원, 2007, 325~380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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